[장우석의 電影雜感 2.0] OTT 성장과 영화관의 몰락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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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15   |  발행일 2021-01-15 제39면   |  수정 2021-01-15
한국영화 기대작, 극장개봉 포기하고 NETFLIX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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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19일 오전 8시30분(현지시각)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 안. 베니스·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영화 '옥자'가 언론시사회를 앞두고 관객석에서 야유와 박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스크린에 옥자의 제작사인 넷플릭스 타이틀이 올라간 직후였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도 소란이 끊이지 않자 영화제 사무국은 8분 만에 상영을 중단했다. 이후 오전 8시49분에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상영했다. 이 초유의 사태는 칸영화제에서 최초로 OTT(Over-The-Top. 개방된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over-the-top 용어에서 top은 TV 셋톱 박스를 뜻한다) 배급 방식의 영화 두 편을 경쟁 부문에 초청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사태가 벌어지기 전날 열린 영화제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는 건 엄청난 모순"이라고 말하며 사실상 옥자를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언해 형평성 논란을 일으켰다. 앞서 칸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가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변화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프랑스극장협회 역시 "넷플릭스가 부가가치세도 안 내고 텔레비전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칸영화제가 안겨주는 혜택만 가져간다"며 반발해 '옥자'는 함께 논란이 된 노아 바움백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와 칸영화제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화제 이후 프랑스 내 상영이 금지되고 말았다.

코로나 전 봉준호 '옥자' OTT 서비스
넷플릭스가 지원한 예산·창작의 자유
칸 심사위원 비판속 감독은 협업 만족

빼어난 미장센·서스펜스 '사냥의 시간'
영화계 기대주 이충현 감독 작품 '콜'
팬데믹 장기화 사태로 극장 공개 불발

한국 영화 최초 우주배경 SF '승리호'
개봉 미루다 내달 TV로 시청 아쉬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내놓기 전에 만든 옥자에 넷플릭스는 무려 5천만달러를 제작비로 투자했다. 이는 역대 한국영화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봉 감독은 "옥자에 가장 필요했던 건 '설국열차'보다 많은 예산과 더불어 완벽한 창작의 자유였다. 이 두 가지를 넷플릭스가 제공키로 했다"며 감독으로서 넷플릭스와 협업에 만족을 표했다. 칸영화제 상영 이후 옥자의 한국 배급을 맡은 NEW에서는 국내 멀티플렉스 3사에 개봉을 추진했으나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후 IPTV와 다운로드 서비스를 거쳐 일정 기간이 지나면 TV와 유·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볼 수 있는 전 세계 영화 유통 시스템을 넷플릭스가 존중하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옥자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동시 개봉 문제로 멀티플렉스가 아닌 대한극장·서울극장 같은 곳에서만 상영되었다. (대구에선 만경관에서 옥자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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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윤성현 연출) 포스터

당시 옥자를 OTT 시장에서 독점으로 공개하면서 넷플릭스는 이용자 수가 2배 넘게 급증하면서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하는 한국영화를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지난해 4월23일 '사냥의 시간' 공개 이후로 여러 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으로 많은 관객이 차기작을 기다렸던 윤성현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제 70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공식 초청되면서 한껏 기대감을 높였다. 거기에 한국영화계에 주목할 만한 젊은 배우들이 여럿 주연을 맡으면서 일찌감치 개봉일을 확정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자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나 역시 OTT 방식으로 관람하긴 했지만 빼어난 미장센에 관객을 불안에 떨게 하는 뛰어난 서스펜스 연출,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총격신을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콜(이충현.연출)_poster
'콜'(이충현 연출) 포스터

같은 해 11월27일 공개된 '콜' 역시 단편영화 '몸값'으로 일찌감치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주목받은 이충현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갖고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한편 출연한 배우들의 열연이 유독 돋보여서 이 역시 TV가 아닌 극장에서 봤었다면 몇 배는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올해 1월1일 공개된 '차인표'는 배우 차인표가 극중 차인표를 연기하는 코미디 영화로, 한때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대중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차인표가 전성기 시절의 영예를 되찾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작품이다. 김동규 감독은 신인이지만 2019년 '극한직업'으로 천만 영화를 만든 바 있는 영화사 어바웃필름이 제작한 코미디라 관객들의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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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 (조성희 연출) 포스터

그리고 '늑대소년'이라는 판타지 로맨스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라는 하드보일드 탐정물을 내놓아 한국 상업영화의 장르적 확장에 앞장섰던 조성희 감독이 한국영화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승리호'역시 지난 해 텐트폴 시즌 개봉을 염두에 두고 개봉을 계속 미루다 다음 달 5일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있다. 2092년을 배경으로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지난해 5월 공개된 예고편만으로 단번에 관객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린 바 있었는데 TV 화면으로 볼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이 된다.

극장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관객 수 급감이라는 현실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대로 공들여 만든 영화를 극장에 건다면 수익은 고사하고 쏟아 부은 제작비와 홍보비조차 건질 수 있을지 난망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은 영상 플랫폼 유튜브 등으로 기존 시청자들이 몰리면서 레거시 미디어들이 몰락했던 것처럼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인다. 아직 '옥자'를 제외하면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한국영화는 없다. 그러나 '킹덤'이나 '인간수업' '스위트 홈' 같은 드라마 시리즈처럼 자체 제작한 영화들도 곧 가시화될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넷플릭스가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예산뿐 아니라 완벽한 자유까지 보장한다고 하면 극장 개봉을 1차 목표로 삼았던 기존 시스템은 붕괴가 자명하다. 4년 전 옥자 개봉을 불허했던 멀티플렉스 3사들은 속속 휴업과 폐점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다. OTT의 편리를 모르진 않으나 극장이 아니면 만끽할 수 없는 영화의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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