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선교의 성지 '청라언덕'…대구 첫 사과나무 있는 그 언덕, 그곳엔 선교사의 마지막 안식처가 있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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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9   |  발행일 2021-01-29 제36면   |  수정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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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스윗즈 주택과 제일교회의 겨울풍경.

담쟁이 잎이 다 져버린 청라언덕에 시나브로 겨울바람이 분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 눈을 감는다. 비로소 바람이 보인다. 바람이 전하는 말에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던 그의 사랑이 메아리친다. 청라언덕은 미국 선교사들이 애면글면 복음을 전파하던 전진기지였다. 1898년 개화기 때 선교사 아담스와 존슨이 달성서씨 문중으로부터 땅을 헐값에 매입, 지금의 동산병원과 학교를 지었고 청라언덕의 얼개가 생겼다. 대구시 주요 관광지의 하나이며 대한민국 구석구석 100경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단지 선교하기 위해서 그들의 고국에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와 이곳에 정착한 그 위대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멀리 우주에서 보면 지구촌은 모두 이웃이다. 그럼 누가 이웃일까. 어느 날 예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자 "이웃이 누구냐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러자 예수는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가고, 또 한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갔으나, 여행하는 어떤 사마리아인은 거기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고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봐주라. 부비(浮費)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했다." 이렇게 비유하시고 예수께서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했다. 그가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답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다. 진정한 이웃은 고귀한 혈통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비천한 인종이라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이라고 질문자는 대답해야 했다.

개화기 선교사 아담스·존슨, 동산병원·학교 지으며 언덕 얼개 생겨
"이웃 사랑하라"던 예수 말과 달리 이웃 아닌 이웃이 지배하는 사회
'회개와 선교의 언덕' 청라는 빛 속에 영혼 꺼내 들여다보게하는 공간

선교박물관 된 스윗즈 사택, 주춧돌로 대구읍성 돌 사용해 의미 더해
1899년 심은 사과나무는 대구의 특산물 되고 市 보호수 1호로 지정
의술 베풀던 선교사와 그 가족들, 은혜정원에 124개 묘석으로 남아


지금 우리의 이웃은 과연 누구일까. 얼마 전 있었던 예루살렘 당시 제사장에 해당하는, 우리 사회 정경심 교수의 판결문은 의미심장하다. 재판부는 "단 한 번도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또 정 교수 측이 "진실을 이야기한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줬다"고 했다. 대중에겐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가라 하면서. 말로는 약자의 편인 양 하고, 자기들은 욕망의 사다리를 잽싸게 타고 상위 계층에 올라 흥건해진 풍요를 누린다. 그 뻔뻔한 위선, 몰염치한 반칙과 특혜는 부르주아의 속물보다 더 탐욕스럽다. 지금은 이런 이웃 아닌 이웃,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회개와 선교의 언덕' 청라는 빛 속에서 영혼을 꺼내는 곳이다.

먼저 선교박물관(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을 둘러본다. 마르타 스윗즈 선교사가 살았던 사택이다. 스윗즈 여사를 비롯해 계성학교 4대 교장인 핸더슨, 계명대 초대 학장인 캠벨 등의 선교사가 거주했으며 대구읍성 돌을 주춧돌로 사용해 문화재로서의 큰 의미가 있다. 선교박물관은 개신교회사에 관한 사진 자료와 선교 유물, 구약과 신약의 세계에 대한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참에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가져와 심은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도 구경한다. 한때 대구 특산물이었던 사과나무를 이때부터 재배했던 것.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돼 있다.

이어 의료박물관인 옛 선교사 챔니스 주택(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5호)으로 들어간다. 옛 의료 기구 청진기와 대구 최초의 피아노 등이 전시돼 있다. 인근에 대구가 고향인 작곡가 박태준 노래비도 있다. 박태준이 작곡하고 노산 이은상이 작사한 가곡 '동무생각'이다. 푸른 담쟁이 넝쿨이 아름다웠던 청라언덕, 빛 무리처럼 핀 백합화는 그가 연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고 박태준의 가슴에 싹튼 사랑과 눈시울에 맺힌 추억이 안쓰러운 노래는 이런 내용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첫사랑은 가슴에 영영 박제되는 사랑이다. 라일락 향기 그윽한 환상의 길을 둘이서 걸어가는, 그 물결치는 감정의 파노라마는 박태준 내면의 현실이었다. '사랑의 맛을 알려면 라일락 이파리를 씹어보라'는 그때 유행어. 그 청라언덕을 넘나들던 백합 같은 내 동무는 박태준의 영혼에 불을 지피고 신기루처럼 떠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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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능금의 효시인 능금나무.

선교사 블레어가 살았던 교육역사박물관(대구유형문화재 제26호)도 본다. 조선시대 서당과 1960~70년대 초등학교 교실이 재현돼 있고 시대별 교과서 및 민속자료가 전시돼 있다.

선교사들의 묘지인 은혜정원으로 간다. 우리가 어둡고 가난할 때 머나먼 이국 땅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의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의술을 베풀다가 생을 마감한 선교사와 가족의 안식처다. 사랑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은혜정원에는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을 뿐이다(She is not dead but sleepth)'라고 새긴 제일교회 설립자 아담스 목사의 부인 넬리 딕 아담스(Nellie Dick Adams)의 묘비를 비롯해 124개의 묘석이 있다. 알고 보면 죽음은 도처에 있었고 삶의 일부였다. 어떤 묘비 앞면에는 곰비임비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다시 살아나 부활함으로 완성되었다. 십자가는 인류의 영성이 폭발한 빅뱅이었다. 예수가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으로 십자가에 매달렸기 때문에 인류는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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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으로 올라가는 90계단 풍경.

그럼 예수가 당했던 십자가형을 성경 마태복음 27장으로 알아보자.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은 끓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당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 끌고 가니라. …골고다 즉 해골의 언덕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했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말하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슬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제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예수는 사흘 후에 부활하시었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현대세계는 새로운 영성을 갈망하고 있다. 지금 세상은 발달된 물질문화와 개인중심 실용주의를 진리로 생각하고 그것을 더 없는 행복의 잣대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더 목마르고 안절부절 불안해하고 있다. 에스겔이 환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앙상한 뼈에 생명을 불어넣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그 묘지의 십자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대우여행사 이사>


·문의: 대구광역시 청라언덕 (053)-424-6407
·내비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029(동산동)
·트레킹 코스 : 90계단 - 스윗즈 주택 - 사과나무 - 챔니스 주택 - 박태준 노래비 - 블래어 주택 - 은혜정원
·주위의 볼거리 : 옛 제일교회, 한의학박물관, 진골목, 경상감영, 달성공원, 김광석 거리, 서문시장 야시장, 두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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