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극복' 릴레이 엽편소설] 세번째 글 - 송일호의 '자린고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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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발행일 2021-01-22 제36면   |  수정 2021-01-22
지독한 박 사장에게 부(富)는 부를 낳았다. 지금은 중견기업을 3개나 운영하고 있다.
땅값이 치솟아 지방에서 알아주는 땅 부자가 되어 있다.

더 늙기 전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싶었다.
여자라고는 부모가 정해준 지금의 마누라밖에 몰랐다.
마누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연애를 한 번 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백말도 타보고 흑말도 타보고 싶었다.
송일호 사진 캡션
자신한테 호락호락한 삶이란 실은 삶이 아니다. 이 삶은 저 삶과 연결돼 있으니 오직 이것만의 삶이라 여기는 것은 하나의 질병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한테서 절망을 주인공으로 받들어 살 것인가. 결국 이 모든 일상사를 나의 연장이라 여기고, 그러하니 능히 나의 인생관·세계관·역사관으로 자기가 보기에 가장 좋은 해석을 던져 놓는다. 하지만 그 해석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고 허망한 것인가는 삶의 어느 굽이에서 깨닫게 된다. 어둠이 오는 이유는 뭔가? 밝음이 허망하다는 걸 알려줌인가. 일생이 아니 일상이 허망하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의 심신은 극대로 부드러워지고 보이지 않던 삶의 이면을 보게 된다. 모든 게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모든 걸 위해 존재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된다. 어스름 달밤, 달은 보이지 않고 달무리만으로 허공의 넓이를 가늠하는 한없이 자애로워진 인간의 눈시울을 잠시 떠올려본다.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박 사장은 지독한 자린고비다. 넥타이를 25년 만에 처음 매어본다고 하면 모두가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장가 갈 때 매어보고 딸 시집갈 때 매었다. 늘 점퍼 차림이기 때문에 넥타이를 맬 필요가 없다. 장롱 안에는 딸들이 해준 옷들이 겹겹이 쌓여 있지만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늘 점퍼 차림이다.

박 사장은 구멍가게로 시작해서 자수성가로 돈을 번 사람이다. 어쩌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물건 값만큼 굶었다. 자가용은 있지만 웬만해서는 타지 않는다. 모임이 있으면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한다. 급한 볼일이나 팔다리를 다쳐 운전을 못할 지경이면 대리운전을 부른다. 대리운전은 다름 아닌 마누라의 몫이다.

박 사장은 1천원짜리 플라스틱으로 된 200개짜리 이쑤시개도 한쪽만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양쪽 다 쓰고 모아두었다가 펄펄 끓는 물에 삶아 철저히 소독하고 햇볕에 말렸다가 재활용한다. 박 사장은 식사를 할 때 맛없는 것부터 먼저 먹는다. 맛있는 것은 남겨 두었다가 맨 나중에 먹는다. 그래야 밥맛이 난다. 밥상에 떨어진 밥풀도 틀림없이 주워 먹는다. 방바닥에 떨어진 것도 어김없이 주워 먹는다. 음식을 버리면 복 나간다는 신념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이렇게 지독한 자린고비 박 사장에게 상복이 터졌다. IMF외환위기 때 아나바다 운동이 맹렬히 일어날 때 동사무소에서 모범 절약가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 박 사장을 따라갈 사람은 없었다. 상품은 화장지였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다. 반쯤 나누어서 쓸 수 있을 때까지 쓰고, 코를 풀고 나면 윗목에 던져놓았다가 마르면 또 쓴다. 이러한 박 사장에 비해서 딸들은 마구 쓴다. 화장지를 여러 번 둘둘 말아 쓰는 것을 보면 뒷골이 뻐근해진다.

박 사장이 이렇게 지독한 자린고비가 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박 사장은 태아 때부터 영양실조에 걸려 굶기부터 먼저 배웠다. 왜놈들이 먹을 양식은 다 뺏어가고, 심지어 쇠붙이인 놋그릇도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뺏어갔다. 동네 개도 다 잡아갔다.

광복이 되었지만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GNP 50달러의 나라였다.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자료에 의하면 47개국의 원조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GNP 3만달러. 생각하면 그때 우린 얼마나 가난한 나라였던가. 광복과 동시에 호열자(장티푸스)가 전국을 강타해 1만200여 명이 사망했다. 3일이 멀다하고 상여가 나갔다. 상여 뒤를 따르는 어린자식들을 보고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린 박 사장도 울었다. 여기저기 문상객이 먹다 남은 술을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져 더욱 신나게 울 수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산과 들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보릿고개의 처절한 가난을 겪은 박 사장이 농경시대의 가난을 면할 길은 아끼고 절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 내핍생활, 그게 오늘의 박 사장을 만들어 놓았다. 선친은 평소 '아무리 가난해도 3년만 죽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면서 가족에게 절약의 미덕을 가르쳤다. 그 생활철학을 신조로 삼고 어릴 때는 죽으라 죽만 먹고 자랐다. 하루 두 끼밖에 못 먹었다. 지금도 죽만 보면 도망을 칠 정도로 '죽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그만큼 죽을 싫어한다. 그래서 국에 밥을 절대 말아먹지 않는다. 이러한 박 사장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지독한 박 사장에게 부(富)는 부를 낳았다. 지금은 중견기업을 3개나 운영하고 있다. 땅값이 치솟아 지방에서 알아주는 땅 부자가 되어 있다. 1원짜리 한 장도 아껴 쓰는 박 사장이 돈을 아끼지 않는 곳이 있다. 자식농사였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었다. 자식한테 투자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사위들은 모두가 판검사 아니면 의사이고 교수다. 아들 하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졸업을 하고 돌아오면 모든 것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박 사장의 집은 50년 살아온 마당 넓은 한옥이다. 마당에는 텃밭이 있어 사철 먹을 게 넘친다. 아직 한 번도 시장에서 채소를 산 일이 없다. 안방 장롱에는 각종 옷들로 꽉 채워져 있어 이제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 건넌방에는 못쓰게 된 각종 전자제품과 가재도구로 가득하다. 아직 한 번도 버린 일이 없다.

어느 날이었다. 집에 오니 큰방 천장에까지 온갖 물건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딸들이 버리기 위해 임시로 쌓아 놓은 것이다. 깜짝 놀란 박 사장. 유행은 지났지만 아직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싱싱한 새옷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딸들과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자식 이길 부모가 누가 있겠는가. 그들의 입을 이겨낼 수가 없다.

"이렇게 싱싱한 새옷을 버리다니…. 너희들 그럼 벌 받는다."

박 사장은 거리 곳곳에 비치돼 있는 헌옷수거함을 기억해냈다. 나는 못 입지마는 나보다 못한 후진국 사람에겐 귀한 옷이라 여겼다. 옷들을 차에 실었다. 그렇게 많은 헌옷수거함은 좀처럼 눈에 나타나지 않았다. 한 곳을 찾아내었다. 마침 그 언저리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옷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몇 번 나르고 나니 땀이 비 오듯했다. 그런데 주차위반 딱지가 붙어있었다. 기분이 몹시 상했다.

"허, 좋은 일 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네…."

박 사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또 다른 수거함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천하의 자린고비 박 사장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평생 입고 다니던 때 묻은 점퍼를 벗어던지고 제일모직 최고 신사복으로 갈아 입은 것이다. 구두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홍콩에서 온 중절모자는 누가 보아도 어울렸다. 금테 안경에 콧수염도 기르기 시작했다. 소나타 구형차가 최고급 외제차 BMW로 바뀌었다.

박 사장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뀐 이유가 있다. 18조원의 재산을 한 푼도 못 사용하고 쓸쓸하게 돌아가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때문이다. 그가 남긴 어록 중에 그의 맘을 움직인 대목이 있다. '돈, 권력, 직위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무한한 재물 추구는 나를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놓았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마누라 자식 말고는 다 바꿔라.'

이 말은 박 사장을 향한 충고 같았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내가 왜 진작 이것을 몰랐던가? 새 사람이 된 박 사장은 말과 행동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일만 했고 고생도 많이 했다. 이제 쉬고 싶었다. 같이 시간을 나눌 친구를 찾았다. 고향의 친구는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계모임조차 하지 않고 일 밖에 모른 박 사장에겐 친구가 너무 없었다. 늙어갈수록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걸 처음 절감한다. 생각나는 몇몇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코로나 때문에 방콕을 해야 된다면서 거절했다. 외롭다. 외딴 섬에 홀로 서있는 로빈슨 크루소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운동을 하자."

운동으로 건강도 찾고 고독도 풀자. 어떤 운동을 해야 할 것인가? 늦었지만 당연히 최고급 운동인 골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골프 교습소에서 열심히 공을 날렸다. 나이에 비해서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더 늙기 전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싶었다. 연애도 한 번 하고 싶었다. 여자라고는 부모가 정해준 지금의 마누라밖에 몰랐다. 마누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연애를 한 번 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백말도 타보고 흑말도 타보고 싶었다. 백말과 흑말은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 미8군 클럽에 가면 백말도 있고 흑말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러시아에서 온 백말이 많다는 말도 들었지만 용기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골프연습장에는 미8군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수시로 8군 골프장을 찾았다. 박 사장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아직 필드에 나가기는 어렵고 견학 겸 골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대기실에는 외국 사람들이 많았다.

일행이 라운딩하고 있는 동안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커피를 뽑았다. 아까부터 이쪽을 보고 있는 잘생긴 백인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 박 사장은 이때다 싶어 인사를 받아주고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육체미가 넘쳐나는 백인 여자는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았다. 클럽에 근무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클럽은 회원제이며 아는 사람이 있으면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박 사장은 황홀했다. 이렇게 잘생긴 젊은 백인 미녀를 여기서 만나다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클럽이 문을 열면 만나자고 약속하고 명함도 주고받았다.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입회금으로 돈도 듬뿍 쥐어주었다.

골프장을 다녀온 이후 박 사장은 몸이 좀 이상했다. 목 감기인 줄 알고 약을 사먹어도 효험이 없었다. 열이 나고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호흡도 곤란했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코로나인지 검사를 한 번 해보라고 했다. 검사를 받았다. 손 전화에 카톡이 날아왔다. 양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모님도 양성반응이 나왔다. 부부는 119차로 실려 갔다. 주인 없는 집에 소독을 하느라 야단이 났다. 회사도 골프장도 소독하느라 야단이 났다. 코로나19가 서울을 위시해 대도시로 급속히 다시 확산되고 있어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거기다 신종변이 코로나까지 가세하고 있다.

코로나 저승사자는 노인만 잡아간다는 것을 박 사장은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시집 와서 평생 고생만 한 마누라에게 죽을 죄를 지었다. 만에 하나 어느 한쪽이 잘못된다면…. 아니면 둘 다…. 박 사장 눈에는 굵은 눈물이 맺혔다. 공포심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았고 음식도 넘어가지 않았다. 평생 가꾸어온 기업도 박 사장이 없으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송일호
송일호(소설가)1964년 대구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전 대구소설가협회·대구수필문학회장. 장편소설 '남자의 일생'. 소설집 '대학아! 대학아!'. 수필집 '머리도 중요하지만 팔다리도 중요하다'. 칼럼집 '있어도 없고'. 콩트집 '똥침'외 다수. 현진건 문학상. 대구예술상(문학). 한올문학 대상. 대구수필문학상 수상.

"살아 남아야 한다. 내가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이빨을 악 깨물었다. 박 사장은 분노와 떨리는 손으로 백말 여자에게 전화번호를 찍었다. 신호가 가고 있다. 대답은 간단했다.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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