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읽고 상상하며 써 보는 한 해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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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5 08:02  |  수정 2021-01-25 08:13  |  발행일 2021-01-25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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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시인·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신축년 새해가 밝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 말이다. 코로나19의 3차 유행으로 모든 활동이 위축된 가운데 정초의 한파로 사람들은 더욱 간절하게 봄을 기다리고 있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 아이들은 따뜻하게 군불을 땐 방에 이불을 펴고 그 속에 발을 넣고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곤 했다. 할머니는 주로 현실감이 떨어지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지만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으며 긴긴 겨울밤을 보냈다.

흔히 구석기 시대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가 있었고 디지털 시대에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가 있다고 말한다. 호모 나랜스는 '이야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라틴어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제 스토리텔링 능력은 경쟁력 있는 생존 수단이 되고 있다. '나는 이야기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는 전혀 새롭게 창조된 이야기가 아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톨킨, 롤링 같은 작가들은 구비 설화, 전설 등에서 소재를 발굴하여 새로운 감각과 구성으로 자기가 사는 시대가 받아들일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이다.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 나랜스'를 쓴 한혜원의 말처럼 그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천부적인 창조자라기보다는 앞서 존재한 작품들을 잘 이해하고 분석한 후 당대의 패러다임에 부합하도록 재창조하는데 충실한 '스크립터(Scripter)'였던 것이다. 작가는 이미 주어진 현실에서 이야기가 될만한 사건을 선택해 허구적 상상력을 더 보태 재구성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L.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를 다시 읽었다. 금발의 귀여운 도로시는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오즈의 나라에 도착한다. 고향 캔자스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 마법사 오즈가 사는 에메랄드 시로 향한다. 도중에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싶어 하는 허수아비, 심장을 갖고 싶은 양철 나무꾼, 용기를 갖고 싶은 겁쟁이 사자와 함께 여행한다. 그들은 절벽을 넘고 졸음의 꽃밭을 지나, 무서운 짐승의 공격 등을 이겨내며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닥친 어려움을 각자가 가진 지혜와 사랑과 용기로 헤쳐나간다. '오즈의 마법사'는 가공의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 동화를 읽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다.

올 한 해도 고립과 단절, 무료하고 권태로운 시간과 마주해야 하는 때가 많을 것이다. 역병이 창궐한 시기나 표현의 자유를 탄압받는 암흑기에는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며 보다 밝은 미래를 꿈꾸고 구상했다. 책을 통해 현실에 필요한 지혜와 사랑과 용기를 구하면서 늘 꿈꾸고 상상하며 써 보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윤일현〈시인·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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