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故 최숙현 선수 동료에 대한 보복, 사실인가

  • 논설실
  • |
  • 입력 2021-01-26   |  발행일 2021-01-26 제23면   |  수정 2021-01-26

대구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김상윤)는 지난 22일 고(故) 최숙현 선수 등 경주시청 여자 트라이애슬론 선수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주현씨에게 징역 8년에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했다. 또 7년간 신상 공개,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7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로의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팀 닥터라는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훈련 명목으로 트라이애슬론팀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구타와 성추행 및 폭행을 저질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최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밝혔다. 부모에게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말을 남기고 지난해 7월1일 스물둘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최 선수 사건의 첫 법적 매듭이다.

최 선수가 보낸 마지막 SOS는 체육계 내 만연한 폭력 관행과 성적 지상주의를 없애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국회에서 ‘최숙현 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메달보다 인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지난해 9월 독립법인인 스포츠 윤리센터도 설립됐다. 하나 출범 4개월 만에 스포츠 윤리센터는 직원 불법 채용으로 휘청거리고 있으며, ‘맷값 폭행’으로 물의를 빚었던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당선됐다. 법과 제도를 갖춘다고 해서 체육계의 고질적인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최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에 호들갑 떨었던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지금까지 일언반구조차 없다. 정의당만 1심판결에 대해 "피해자들이 입은 고통에 비해 형량이 약하다"라고 논평했을 뿐이다. 용기를 내서 가해자들을 고소했던 최 선수 동료 대부분이 어느 팀에서도 찾지 않아 운동을 그만둬야 할 처지라고 한다. 이는 최숙현 법을 체육인들이 거부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런 식의 보복이 가해지면 누가 공익제보를 하겠나. 정부는 당장 고소했던 선수들의 불이익에 대해 진상 파악에 나서라. 그 길만이 최 선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