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의 문학 향기] 벚꽃 피면 '꽃 공양' 하리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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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9 07:41  |  수정 2021-01-29 07:44  |  발행일 2021-01-29 제15면

이정연

그날 밤 여인은 딸아이를 업고 돌아왔다. 택시 운전수가 기분 나빠해 더 타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미나마타역에서부터 선로를 따라 걸었다. 조각조각 해부한 몸을 봉합해 붕대로 칭칭 감아 놓으니 눈과 입술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 '피라고 해야 할지, 국물이라고 해야 할지가 스며나오는 아이'를 업고 혹시라도 몸의 일부가 떨어질까 조심조심 추슬러가며 집까지 왔다. 1956년 어느 밤이다.

죽은 이들의 몸을 그렇게 해부용으로 제공하고서야 그해 처음 국가는 인류 최초의 공해병이 된 미나마타병을 인정했다. 병이 신일본질소회사 '짓소'에서 흘려보낸 폐수 속 수은과 관련 있음을. 그러나 이미 1952년부터 스스로 머리를 벽에 부딪혀 죽는 '자살 고양이'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사람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손발이 오그라들며 굳고 마당으로 뛰쳐나가 바닥에 머리를 처박거나 경련을 일으키며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고….

조개를 주워 가족에게 삶아주기 좋아하고 집 안팎 청소하기 좋아하던 아가씨도 병에 걸렸다. 마당에 자욱하게 벚꽃이 떨어지면 뛰쳐나가 경련을 일으키다 꽃잎을 줍는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손으로 주우려다 보니 꽃잎이 짓뭉개질 뿐. 그래서 부모는 벚나무를 베어버렸다. 이시무레 미치코라는 평범한 주부가 미나마타병을 만났다. '어떤 세기에나 인신공양에는 가장 연약한 영혼, 무방비한 생활자들이 선택'된다는 것을 깨닫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대신해 말하고자 30여 년간 그들과 함께하며 기록했다. 위 이야기들은 '고해정토' 3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신들의 마을'에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여기에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자주 만났다. 국가는 미나마타병을 인정하고도 짓소와 한편이 되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후로도 9년이나 더 폐수를 방류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피해자들을 분열시키고 혐오하는 일에 동조한다. 심지어 '구경거리로 팔아먹어도 될 괴물자식'을 이용해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 한다는 말에 이르면 아….

딸아이들이 죽은 지 십수 년이 지난 1970년 영혼을 데리고 짓소의 주주총회 자리까지 온, 역시 미나마타병에 걸린 할머니들이 바란다. 딸의 영혼이 팔랑팔랑 갈 수 있도록 딸아이의 눈동자가 되어 꽃잎을 주워 올려달라고. 매년 한 장이면 된다고. 아직도 미나마타병 생존 환자들이 방바닥을 뱅뱅 돌고 있고, 우리는 미나마타병으로부터 배운 것이 너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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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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