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눈치로 배우는 외국어 공부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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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1 07:45  |  수정 2021-02-01 07:52  |  발행일 2021-02-01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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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일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현대사회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나라의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를 배웁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영어는 물론 제2외국어까지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첫 영어수업, 저는 영어가 들려 말을 알아듣는 것보다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눈치로 말을 알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선생님의 얼굴 표정만 봐도 정답을 말했는지 봉창을 두드렸는지 쉽게 알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릴 때 시작한 영어공부가 외국어 능력은 몰라도 눈치를 키우는데는 확실히 큰 도움을 주었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경험은 정말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2021년 영국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의 Dean D'Souza 교수 연구진이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돼 새로 외국어를 배운 사람들보다 눈썰미가 좋다고 합니다. 즉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가정에서 성장하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인지적 이점, 즉 눈치백단이 된다는 거죠.

D'Souza 교수 연구진은 127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시각적 변화에 대한 감지능력을 테스트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실험은 화면에 나타난 사진을 주시하는 것이었는데, 사진 하나는 점차 바뀌고 다른 사진은 그대로 남아 있도록 했습니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돼 새로 외국어를 배운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사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또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가정 출신들은 바뀌는 그림으로 시선을 훨씬 더 빨리 옮기고 집중했습니다.

이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자주 주의를 전환함으로써 더 복잡한 언어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눈치가 빨라 다른 사람의 입의 움직임, 얼굴 표정, 미묘한 움직임과 같은 다양한 시각 정보를 이용해 언어를 배우는 능력이 좋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번 연구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특별한 언어 학습능력은 성인이 되어서도 잘 유지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이런 외국어 학습능력을 키운다면 아마도 나중에 다른 언어를 배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죠? 이런 이유로 이중언어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들이 몇 개국 언어를 새로 배우는 것이 모국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겨울방학에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여러분의 자녀들은, 나중에 출중한 외국어 능력을 뽐내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표정 변화도 잘 인지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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