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의 문학 향기] 이 시대 '김 첨지'들께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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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5 07:42  |  수정 2021-02-05 08:04  |  발행일 2021-02-05 제15면

이정연

먹고살기 위해 100년 전 경성을 뛰어다니던 사람들이 있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어서였을까?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이 끊이지 않은 인력거꾼 '김 첨지'는 삼십 원이라는 거금을 벌었다. 그중 1원으로 거하게 막걸리를 마신 후, 오늘은 제발 나가지 말라고 붙잡던 병든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들고 돌아왔더니 아내는 죽고 아이는 엄마의 빈 젖을 빨며 울고 있는 것으로 끝나는 이야기, '운수 좋은 날'이다. 그 시절 인력거꾼은 이미 전차에 밀려나고 있었다. 인력거가 전차와의 경쟁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었겠는가.

200년 전 영국에서도 먹고살기 위해 굴뚝을 청소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굴뚝 청소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아주 어렸죠/ 말도 잘 못하는 저를 아버지가 팔아버렸어요/ 난 그저 '베베베' 하면서 울었죠/ 지금은 굴뚝을 쑤시며 검댕 속에서 잠을 자요." 굴뚝 청소는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일수록 환영받았다. 좁은 굴뚝에 드나들기 쉽고 무엇보다 임금이 쌌기 때문이다. 하루 15시간 일하고 식사시간이라야 고작 10분. 굴뚝에서 잠들어 질식하거나 타죽는 아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굴뚝청소용 기계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을 때도 아이들은 '굴뚝청소기'로 판매되었다. 아이들이 더 '쌌기' 때문이다.

2020년 1월13일부터 2021년 1월12일까지 21명의 택배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느라 집에서 손가락만 움직일 때 누군가는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총알'처럼 일했다.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출범했다. '죽도록 일한다'는 말이 관용표현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임에도 번번이 합의가 무산되자 택배노동자들은 "살고싶다"고 사회적 총파업을 선포했다. 설을 앞두고 파업을 막기 위해 5차 실무회의에서 분류 작업을 택배사가 책임지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 안도했다. 그러나 합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택배사들은 약속을 배신했다. 다시 파업을 준비하자 다시 약속을 이행하기로 했다.

천천히 오세요. 이 코로나 시국에선 선물이야 진달래 필 때 받으면 어떻습니까. 어둡지 않을 때, 아직 해 있을 때 받으면 됩니다. 꽃구경도 하시고 땀도 닦으며 쉬엄쉬엄 오세요. 우리 같이 살아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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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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