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선 '갈낙탕'으로 몸보신…무안 '낙지호롱' 원래는 양념않고 돌돌 말아 바치던 제물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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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5   |  발행일 2021-02-05 제37면   |  수정 2021-02-05
낙지, 지역마다 먹는 방법도 다양

6황칠갈낙탕
황칠나무 육수에 갈비와 낙지를 넣고 끓인 갈낙탕.
4낙지호롱
무안의 현경과 해제지역에는 제물로 '낙지호롱'을 만들어 올렸다. 어른 한 뼘 정도의 짚이나 나무젓가락에 낙지를 감아서 팬에 구운 요리다. 제물로 올릴 때는 양념을 하지 않았다.

동해안을 제외한 모든 연안에 낙지가 서식하기 때문에 철 따라 지역에서 내놓는 음식도 다양하다. 목포, 무안, 신안, 영암, 강진 등 낙지를 많이 잡는 서남해에서는 산낙지, 기절낙지, 낙지물회, 연포탕, 탕탕이, 낙지육회 등 다양한 음식을 내놓는다. 태안의 박속밀국낙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낙지주물럭, 낙지젓갈, 김치에 넣는 낙지섞박지, 낙지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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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신 다음날 속을 달래는 해장국으로 연포탕이 최고다.

무안의 기절낙지는 낙지몸통을 잘라내고 머리와 다리를 굵은 소금에 박박 문지른다. 다리를 휘어감으며 찰싹찰싹 붙던 낙지는 순식간에 축 늘어져 버린다. 접시에 올려놓아도 죽은 듯하다. 나무젓가락으로 다리 하나를 집어 초장에 넣는 순간 꿈틀거리기 시작해 입안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꿈틀거린다. 연포탕이나 갈낙탕 등을 먹기 전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것으로 '탕탕이'를 내놓는다. 낙지를 도마 위에 놓고 칼로 다져서 컵에 담아 참기름을 몇 방울 쳐서 먹는다. 술 먹은 사람들에게 속을 달래는 해장국으로 연포탕이 최고다. 무안군 청계면 바닷가 식당에서 먹은 연포탕이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으뜸이다. 강진에는 커다란 왕갈비 두 대에 대낙지 한 마리, 그리고 황칠나무로 육수를 내는 갈낙탕도 유명하다.

태안의 박속밀국낙지에 얽힌 이야기는 애틋하다. 쌀이 귀하던 옛날에는 밀가루가 주식이었다. 거친 밭에서도 곧잘 자라니 식량으로 밀을 많이 재배해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해결했다. 이를 태안에서는 '밀국'이라 했다. 당시에는 낙지를 비롯해 수산물 유통이 어렵고 대중화된 재료도 아니어서 돈도 되지 않았다. 낙지를 잡아 큰 통에 가득 넣어가 팔아도 쌀 한 됫박 얻기 힘들었던 시절이다. 흔하고 많이 잡히는 낙지가 밀국에 더해지고 주렁주렁 달린 박속을 또 더해 시원함을 배가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안음식이 '박속밀국낙지탕'이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인천 송도에는 장어와 낙지를 넣고 해산물과 채소를 더한 '장낙전골'이 유명했다.

음식만큼 보수적인 문화도 없다. '음식유전자'처럼 원형을 어떤 방식으로든 전승한다. 낙지의 고향인 무안의 현경과 해제지역에는 제물로 '낙지호롱'을 만들어 올렸다. 어른 한 뼘 정도의 짚이나 나무젓가락에 낙지를 감아서 팬에 구운 요리다. 지금은 식당에서 메뉴로 팔고 있지만 제물로 올릴 때는 양념을 하지 않았다. 낙지머리는 탕국을 끓여 올렸다. 낙지를 잡아 살았던 조상들에게도 낙지음식을 바치는 것은 자연스럽다. 산 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음식이기도 하다. 외지에 나간 무안 사람들은 어머니가 볏짚에 감아준 낙지호롱을 잊지 못한다. 어디 호롱낙지뿐이겠는가. 낙지초무침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인다. 막걸리 식초로 만들어 낙지도 부드럽고 잃었던 입맛도 살아난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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