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낙지, 갯벌 속 산삼..."에구구…찾다가 허리 나가겠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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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5   |  발행일 2021-02-05 제37면   |  수정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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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는 허한 몸을 보하는데 낙지만 한 것이 없다고 쓰여있다. 그래서 어민들은 낙지를 갯벌 속의 산삼이라 불렀다. 낙지는 문어목 문어과에 속하는 연체동물로, 씨알이 굵은 낙지를 갯벌에서 한 마리 얻으려면 삽으로 허리 깊이만큼 파헤쳐야 한다.

'자산어보'는 허한 몸을 보하는데 낙지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민들은 낙지를 갯벌 속의 산삼이라 불렀다. 씨알이 굵은 낙지를 갯벌에서 한 마리 얻으려면 삽으로 허리 깊이만큼 파헤쳐야 한다.

낙지는 문어목 문어과에 속하는 연체동물로 두족류에 속한다. 척추가 없어 몸이 연하며 체절이 없는 연체동물 가운데 다리(북미에서는 팔이라고 함)가 머리에 달린 동물로 바다에 서식한다. 낙지 외에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 문어 등이다. 화석으로만 발견된 암모나이트나 벨렘나이트도 두족류다. 낙지는 갯벌 조간대 하부에서 수심이 깊은 바다 저층서 서식한다. 우리나라는 갯벌이 발달한 인천에서 진도까지, 또 해남에서 부산까지 낙지가 서식한다. 우리나라 외에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연해에 분포한다. 무척추동물 중에서 뇌가 가장 크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낙지잡이 어민들은 낙지가 매우 영특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식처를 보면, 호흡하는 흔적과 낙지가 드나드는 구멍이 따로 있다. 입구를 확인하고 파보면 여러 개의 굴을 만들어 서식한다. 낙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웬만한 기술과 노력이 없다면 잡기 어렵다.

서·남해안 갯벌·돌틈 서식
허한 몸 보신 최고의 음식
세발, 다리 가늘고 길단 뜻
식감 연해 국물요리 제격

미끼·통발·맨손으로 잡아
맨손어업 국가유산등재돼

추워지면 맛 좋고 값 올라
간척·남획으로 개체 급감
금어기 만들고 양식 노력


◆낙지, 이해와 오해

자산어보에는 낙지를 '석거'라 하고 속명은 '낙제어'라 했다. 특징으로 '사람의 원기를 돋운다'라고 했다. 그리고 '소 중에 마르고 쇠약해진 놈에게 석거 네다섯 마리를 먹이면 바로 건실해진다'고 덧붙였다. '난호어목지'에 따르면 '돌 틈의 구멍 속에 사는데 사람이 잡으려 하면 다리로 돌에 붙어 사람에게 저항하기에 석거'라고 한다.

낙지는 몸통·머리·발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분되며 다리는 여덟 개이며 각 발에 2열의 흡반이 있다. 야행성으로 밤에 갯벌 속 구멍에서 나와 게, 새우, 작은 물고기 등을 잡아먹는다. 어민들은 게를 미끼로 낙지를 유인해 잡는다.

수명은 보통 일년이다. 봄에 알에서 깬 새끼낙지는 여름을 견디고 가을을 잘 보내면 큰 낙지가 돼 겨울잠을 잔다. 이 무렵 낙지는 겨울을 나고 산란을 준비하며 몸을 만든다. 이 낙지를 어민들은 '꽃낙지'라 한다. 낙지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가장 맛이 좋고 씨알도 굵고 값도 후하게 받는다. 낙지가 갯벌 깊이 들어가는 가을이나 초겨울에도 낙지를 찾아 갯벌로 가는 이유다.

낙지가 갯벌에만 사는 것이 아니다. 바다나 돌 틈에서도 곧잘 산다. 뻘낙지만 아니라 돌낙지라는 말도 있다. 몸이 회색을 띠면 뻘낙지, 붉은빛을 띠면 돌낙지로 서식처를 짐작하기도 한다.

세발낙지에 대한 오해도 있다. 세발낙지는 다리가 가늘고 긴 낙지를 말한다. 어린 낙지가 아니다. 갯벌에 서식하는 낙지가 돌이 많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낙지에 비해 세발을 갖고 있다. 상대적으로 식감이 부드럽다. 맛은 개인마다 조리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연포처럼 삶아서 국물을 내며 끓여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세발낙지가 좋다는 오해가 어린낙지를 포획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북한에서 낙지는 오징어, 오징어는 갑오징어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판한 '조선의 바다'(1965·평양)에는 '낙지는 발이 10개 있고 몸통은 길고 유선형으로 되어 있다. 오징어라고도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낙지는 동해안에서 잡히는데 오징어는 서해안에서 잡힌다', '오징어는 뼈를 가지고 있고 발은 10개'라고 했다. 그러니까 오징어는 갑오징어를 말한다. 주꾸미는 '죽검'이라 하고 '난소가 성숙하면 밥알 모양으로 된다'고 했다. 정작 낙지에 대한 소개는 없다. 남북정상의 만남 이후 북한에서 낙지를 주문하면 오징어가 나온다는 말로 통일의 필요성이 회자되기도 했다.

◆살 곳은 없애고, 찾는 사람은 많다

낙지는 가을이면 그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지고 높아진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귀해지고 값이 올라간다. 이때는 두세 마리면 10㎏ 쌀 한 가마니와 값을 겨룬다. 쌀이 귀한 시절에는 몇 접(1접은 20마리)을 가지고 가도 쌀과 바꾸기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이젠 쌀은 흔해지고 낙지는 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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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뻘낙지로 유명한 곳은 탄도만 일대의 무안갯벌과 신안의 섬갯벌이다. 영산강 하구의 영암갯벌은 방조제가 물길을 막기 전까지 최고의 세발낙지 서식지였다. 경기만 일대 갯벌도 낙지천국이었다. 시화호와 화흥호 일대의 갯벌이다. 낙지가 많았던 시화호 안에 있는 음도, 어도, 형도, 그리고 갯벌이 섬과 함께 사라졌다. 화성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갯벌을 잃은 우정읍 일대의 어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금은 인근 갯벌에서도 낙지는 찾기 어렵고 망둑어 천지가 되었다. 하지만 입맛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아 곳곳에 낙지전문점이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 갯벌이 좋은 인천 송도갯벌의 낙지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으로 변한 영종도, 삼목도, 신불도, 용유도, 신도, 시도, 모도 그리고 무의도와 소무의도 일대도 낙지가 많았다. 북쪽으로 강화갯벌과 석모도에도 낙지가 많았다.

낙지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서해 어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남해안의 통발로 낙지를 잡는 어민들과 서해의 연승(주낙)으로 낙지를 잡는 어민들의 타격이 크다. 삽이나 호미를 이용해 낙지를 잡는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낙지 양식과 금어기를 통해 자원회복과 증식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없었던 낙지잡이 금어기가 생겼다. 또 인공수정으로 부화한 어린 낙지를 방류하기도 한다. 갯벌에 낙지목장을 만들어 양식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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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잡이는 크게 미끼를 이용해 낙지를 유인해서 잡는 연승어업과 통발어업, 맨손이나 단순한 어구를 이용하는 맨손어업 등이 있다. 연승어업을 이용한 낙지잡이 모습(왼쪽)과 맨손낙지어업의 도구 낙지삽과 낙지바구니.

낙지잡이는 크게 미끼를 이용해 낙지를 유인해서 잡는 연승어업과 통발어업, 맨손이나 삽이나 가래 혹은 호미 등 단순한 어구를 이용하는 '맨손어업' 등이 있다. 맨손낙지어업은 2018년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등재된 대상지역은 전남 무안군 48.87㎢와 신안군 69.48㎢, 총 118.35㎢의 갯벌지역이다. 이곳 낙지잡이는 전통적인 맨손어업의 비중이 높고, 전승지식이 전승되고 있다. 무엇보다 맨손어업의 지속적인 보전관리를 위한 행정과 주민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간척과 매립은 물론 연안어장의 오염으로 서식지는 점점 감소하고 연승어업과 통발 등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속하게 감소했다. 여기에 지구온난화와 수온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속가능한 어업으로 평가받는 맨손어업을 이용한 낙지잡이가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의미가 크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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