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대구에 지금도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동네가 있다

  • 김점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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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8   |  발행일 2021-02-24 제22면   |  수정 2021-02-08
공동화장실
대구 북구 칠성동의 한 공동화장실.

대구시 북구 칠성동에 가면 6·25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집은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흙으로 벽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조심스러운 좁은 통로, 머리가 닿을 것 같은 낮은 처마, 보온으로 덮은 천이 낡은 지붕 위가 훤히 쳐다보인다. 피난민촌, 학고방, 판자촌이라고도 불린 곳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195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하다.


좁은 통로를 마주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은 9.9㎡(3평) 크기로 부엌 달린 방 한 칸이 전부다. 이곳은 대문도 없다. 기차 칸처럼 붙어있다. 옆집과는 벽이 경계다. 문 앞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집에선 나지막한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 나온다. 2뼘 크기의 창문은 햇볕 대신 한기가 들어온다. 삶에도 가난의 냄새가 깊게 뱄다. 유일한 난방장치인 아궁이는 전기장판으로 대신하거나 연탄보일러를 사용한다.


통로에는 장독 하나, LPG 가스통, 세탁기, 쌓아둔 연탄, 벽에 못을 박아 듬성듬성 집게가 꼽힌 빨랫줄, 양파 서너 개 마늘 몇 통이 매달린 벽에 바구니도 걸려 있다. 실내공간이 좁아 밖으로 나온 물건들로 통로는 각 세대의 물건 보관장소다.


동네 입구에는 이곳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화장실이 있다. 세월의 흐름에 공동화장실도 재래식에서 수세식으로 바뀌었고 좌변기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크기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배려한 것이다. 공동화장실이다 보니 불청객이 종종 실례하는 사례가 있어 자물쇠로 잠가 각자 관리하고 있다.


옛날에는 한집에 보통 5~6명 많게는 10여 명도 살았다. 방 한 칸에 쪽잠을 자도 감사한 시절이었다. 아침이면 공동화장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공동 우물이 있었으나 식수 때문에 서러움도 많이 받았다. 칠성시장과 대구역이 인근에 있어 일자리를 구하기 쉽고 빨래를 할 수 있는 신천이 있어 동네가 형성됐다. 맨 처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 이사를 하고 현재 거주하는 사람들은 세입자들이 많다.


주인 가구는 벽을 쳐서 두 칸 혹은 서너 칸을 한 공간으로 주방과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하는 가구도 있다. 나머지 가구는 추운 겨울에도 집 밖 공동화장실을 이용한다.


수리를 한 집도 있으나 처마의 널빤지가 흘러내릴 것 같은 건축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집도 눈에 띈다. 집도 사람도 다 같이 늙어가고 있다.


아직도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으로 대구에는 동구 신암동과 이곳 북구 칠성동이 유일하다. 신암동은 현재 재개발이 추진 중이다. 조상들의 과거 흔적은 멀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글·사진=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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