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 박종문
  • |
  • 입력 2021-02-15 07:50  |  수정 2021-02-15 08:00  |  발행일 2021-02-15 제13면

2021021401000439500017711
윤일현〈시인·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선생님, 우리 아이가 몸이 아파 고1 입학과 동시에 휴학했습니다. 신학기에 다시 1학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생활이 힘들 것이라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학업 문제가 아닙니다. 동갑내기 2학년한테 '반말' 들으며 아랫사람 취급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네 할 일만 집중하면 안 될까?' 하니, '학년이 섞여 있는 동아리 활동 같은 것은 접어야 한다'라며, 이런저런 일에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싫다고 합니다. 아이를 설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학부모와 상담 중에 나온 이야기다.

원한과 원망뿐만 아니라 절망과 희망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출발점은 주로 말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않는 반말은 막말로 이어지고 결국은 물리적 폭력으로 발전하기 쉽다. 비생산적인 정쟁의 출발점도 말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에서는 말과 행동의 책임을 강조하고,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엄격하게 적용한다.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우리 군에서 장교가 사병에게 반말하는 것이 괜찮은가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군에서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반말하는 풍토는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보면 좋겠다. 독일에서는 이미 20세기 초부터 군에서 반말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장교와 사병이 죽마고우 친구라 할지라도 제삼자가 있으면 반드시 존댓말을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군법에 회부된다고 한다. 법학 전공 학생이 친구 간에 언쟁을 벌이다가 물리적 충돌을 일으킨 기록이 있으면 법조인 시험 자격이 박탈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연예계나 스포츠 스타들이 학창 시절의 학교 폭력 문제로 도중 하차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구사하는 천박한 막말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에서 난무하는 저속하고 품위 없는 말은 국민 정신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분야에서 품위 있는 말을 구사하는 풍토를 조성하지 않으면 세상은 점점 각박하고 살벌해질 것이다. 치열한 몸싸움으로 감정이 격해지기 쉬운 운동 경기장에서 감독이 넥타이를 매고 정장 차림으로 선수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의관을 정제하고 있으면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 신사도를 생각하며 자신을 더 잘 자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동급생과 선후배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예절 교육이 필요하다. 왕따나 학폭 문제는 정제되지 않은 반말과 막말에서 시작된다. 고운 말과 순화된 말을 쓰는 습관이 중요하다. 그 습관은 주로 가정에서 형성된다. 말은 사람의 품격이고 향기이며, 마음의 소리라고 하지 않는가. 윤일현〈시인·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

기자 이미지

박종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