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정 구리거울 대표 "대구 천재시인 古月 이장희 정신·가치 제대로 잇지 못해 아쉬움"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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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17 07:55  |  수정 2021-02-17 07:58  |  발행일 2021-02-17 제19면
'대구 현창사업' 에 쓴소리…
이상화·현진건과 함께 대구 3대 文人
유미주의적 詩…한국 모더니즘 지평
親日 활동 거부…가난하고 고독한 삶
인물 업적·애국주의에만 몰입 말고
고비·역경 등 통합적 축적·보관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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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청년 시인 고월 이장희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푸르고 푸른'. 〈극단 구리거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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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대표

"대구에서 진행되는 현창 사업이 깊이 있는 고민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행사나 사업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인물의 정신을 되살리고 가치를 이어가는 데 역점을 뒀으면 합니다. 물론 지금도 정신과 가치를 담아내지 않는 건 아니죠. 하지만 그 비중이 너무 적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설을 앞두고 만난 김미정 구리거울 대표는 대구의 유명무실한 현창사업에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김 대표는 2017년부터 대구 출신의 청년 시인 고월(古月) 이장희의 시와 생애를 담은 뮤지컬 '푸르고 푸른'을 무대에 올리며 고월을 알리고 있다. 김 대표와 오래전부터 현창사업과 이장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터라, 함께 했던 2시간가량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대구와 이장희에 대한 그의 애정과 현창사업에 대한 아쉬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재미있고도 묵직한 시간이었다.

고월(古月) 이장희는 이상화·현진건과 함께 대구가 낳은 3대 문인으로 꼽히는 천재 시인이다. 친일파 아버지에 대한 수치심으로 평생 처마 밑으로 숨어다니며 사적 세계에 침잠해 유미주의적 감각시에 천착하다 스물아홉에 요절했다. 고월에 대해 말할 때면 김 대표는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여념이 없어 '속사포 설명'을 연발했다.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는 휴대폰으로 시를 찾아 읽고 해석까지 곁들여가며 예찬했다.

김 대표는 '봄은 고양이로다'가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쓴 청년 시인의 작품이라는 걸 대학 시절 때 알고 놀랐고, 10여 년 전 경기도의 한 고서점에서 '상화와 고월'(동향의 문우 백기만이 이상화와 이장희의 시를 모아 펴낸 시집)을 구입하게 되면서 이장희를 본격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고월의 고운 감성과 섬세한 감각의 시에 감탄했죠. 그의 아비는 친일파였고 어미는 일찍 여의어 모성이 결핍된 인물이었어요. 섬세하고 예민한 이 사람이 왜 우리 민족이 처한 일제 강점의 상황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감각에 파고들었는지 궁금했어요."

김 대표는 지난해 이장희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코뮤니타스와 함께 고월에게 바치는 생일상도 차렸다. 지난해 10월 전시회를 시작으로 갈라콘서트·뮤지컬을 거쳐 그의 탄생일(11월9일)에 맞춰 '시 낭독회'로 마무리하며 이장희의 삶과 예술세계를 재조명한 것.

혼자 하기 버거워 코뮤니타스에 도움을 청했다는 김 대표는 "조촐한 행사였지만 순수 시민의 힘으로 그를 기억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고 이장희가 번역한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장구한 귀양'을 지역에서 처음 낭송하는 시간도 가졌다"며 의미를 뒀다. 이어 "사실 대구시에서 기리는 것이 마땅한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월의 시의 특징은 유미주의적이고 감각적이며 회화적입니다. 당대의 시단이 사회적·현실적 경향에 흘렀던 것과 달리 유미주의적 경향의 시를 추구, 한국 모더니즘 시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아버지가 신학교 진학을 반대하고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거나 자신의 친일활동에 협조하라고 강요하지만 이를 거부하자 집에서 쫓겨나 거의 모든 금전적 지원도 받지 못합니다."

김 대표는 "고월은 아버지에 대한 수치심과 저항감으로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평생을 가난과 고독에서 살아간다. 이것이 그에게는 항일일 수 있다. 폭압의 시대를 문학으로 견디고 저항한 것"이라면서 "항일투쟁을 해야만 위대하고 박수받아 마땅한 것인가? 그는 서툴지만, 가치 있게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창사업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 대표는 "대구는 문화 자산이 어마어마한, 프라이드를 가질 만한 도시다. 하지만 그 문화자산을 제대로 기억하고 이어가지 못하며, 통합적으로 축적하고 보관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현창사업에 정신은 사라지고 업적만 남아 있다. 업적도 애국주의에만 몰입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 인물의 인생에는 고비와 굴곡과 시련이 있다. 그 고비와 역경의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떻게 방황했으며 어떻게 성장해 나갔는지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깊이 있고 폭넓게 인물을 다루면서 현창사업을 하면 좋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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