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추연창(도보여행가)...경주 남산 감실석불의 교훈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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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5   |  발행일 2021-02-26 제20면   |  수정 2021-02-25
추연창
추연창 도보여행가

경주 남산 동쪽 비탈로 들어가는 산길을 부처골이라 한다. 이름이 부처골인 것으로 보아 이곳은 옛날에 대단한 불교 번성 지역이었음이 틀림없다. 최치원 유적인 상서장과 화랑교 사이에서 오른쪽으로 얕은 계곡을 따라 들어가 보면, 이 골짜기에는 지금도 보물 198호 불상이 멋진 자태를 뽐내며 남아 있어 애호가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


공식 명칭이 '경주 남산 불곡 마애불 좌상'인 이 보물은 특히 석굴암의 원형이다. 또 선덕여왕의 모습을 아로새긴 불상으로 여겨져 답사자들의 호기심을 크게 북돋운다. 현장에는 높이 3m, 폭 4m가량 되는 바위에 깊이 0.6m, 높이 1.7m, 폭 1.2m 안팎의 굴이 파여 있고, 그 안에 1.4m쯤 되는 부처가 마애불로 새겨져 있다. 즉 감실석불이다.

 

이 감실석불을 온전히 보려면 오후에 방문해야 한다. 오전에는 동쪽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방해 탓에 '할매 부처' 얼굴의 반은 그늘로 가려 있다. 모처럼 선덕여왕을 뵈러 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아마도 신라 때도 감실석불께 기원을 올리려는 여인들은 오후에 이곳을 찾았을 법하다. 당연한 일이다. 오전에는 논밭으로 일 나가는 남편과 아들의 새참 준비 등으로 겨를이 없었을 터이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감실석불이 선덕여왕 관련 유적이니 팔공산 부인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부인사는 선덕여왕의 원당이다. 원당이란 대략 기도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선덕여왕은 서라벌에서 한참 떨어진 팔공산 아래 부인사까지 종종 와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부인사에는 선덕묘가 있다. 선덕여왕을 모시는 사당이다. 무릇 제사는 한 해에 한 번 지내는 것이 하늘의 이치에 맞는 법, 부인사에서 선덕여왕을 모시는 제향 행사도 매년 한 차례 진행될 것이다. 만약 한 해에 한 번 정도 부인사를 방문할 여행자라면 그 시점에 맞춰서 찾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그렇게 하면 새로 그려진 선덕여왕 영정을 보고, 행사에 참여하고, 사찰 구경을 즐기는 일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구 방문의 날', '김천 방문의 날', '의성 방문 날' 등 이른바 지역 단위 축제도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단선적인 축제가 아니라 다의적인 스토리텔링을 갖춘 기획이 필요하다. 답사자들이 석굴암, 선덕여왕, 최적 시점을 두루 계산한 후 경주 부처골 감실석불을 찾듯이, 또 여행자들이 선덕여왕 제향일에 맞춰 부인사를 방문하듯이, 자치단체 차원의 축제도 그렇게 경우의 수를 두루 헤아린 다음 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대구는 2월21~28일 '대구시민주간'도 좋고, 이상화의 출생일 등에 맞춰 '빼앗긴 들' 방문일을 제정해도 괜찮을 듯하다. 현대사에 견준다면 10월1일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하루라 하겠다. '의성 방문의 날'은 제오리 공룡발자국이 발견된 날이나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시점이 괜찮아 보인다. '김천 방문의 날'은 지역 명산품인 포도 생산철에 맞추되 전국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직지사와 결부시키면 괜찮을 것이다.


곧 봄이 온다. 지역 축제는 대체로 봄부터 시작된다. 200여년전 영국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겨울이 끝나가니 봄이 올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겨울이 오면 봄도 곧 온다는 뜻이다. 봄축제는 겨울 이전에 준비해야 하고, 여름축제는 봄 이전에 준비해야 한다. 올해 펼쳐질 우리 지역의 축제들이 코로나19까지 격파하고 전국적 대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한다.
추연창<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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