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대구 북구 칠곡의 역사와 문화 담은 옛집 유화당 종부 권기순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

  • 송은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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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1   |  발행일 2021-02-24 제22면   |  수정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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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인천이씨 쌍명재공파 국동문중 종부 권기순(평상 가운데) 할머니가 답사객들에게 유화당을 소개하고 있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면 집이 종일 '삐걱' 소리를 내며 울어요. 집은 몸이 아파 울고 저는 마음이 아파 울지요."

경북 영천시 화북면 학지촌 권씨문중 큰집에서 대구 북구 칠곡으로 시집와 60년 넘게 고가를 지키며 사는 여인이 있다. 인천이씨 쌍명재공파 국동문중 종부 권기순(85) 할머니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은 대구 북구 도남동 도남지 못둑 아래 국동 유화당(有華堂)이다. 국동은 '국화마을'이란 뜻이고, 유화당은 '국화 만발한 집'이란 뜻.

500년 전 칠곡에 처음 터를 잡은 국동문중은 고려중기 문신 쌍명재 이인로의 직계후손이다. 크게 이름난 인물은 없지만 임란 의병 이두남·규남 형제, 고종 때 쌍효자로 정려를 받은 이희성·희효 형제와 의금부도사를 지낸 이병규 등이 있다.

국동문중 재실 유화당은 대구 칠곡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쌍효자에게 내려진 대구 유일 대문형 정려각인 정효각(旌孝閣), 전국에 걸쳐 885명에 이르는 대규모 명단이 등재된 '유화당계안', 중양절 국화 만발한 유화당에서 행해진 '범국회', 내방가사집 '학지가' 등이 모두 유화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유화당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2017년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몇 차례 유화당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됐고, 2020년 가을에는 156년 전 유화당에서 열렸던 범국회를 재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 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유화당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현재 유화당은 비가 새고 기와가 흘러내리고 대문인 정효각은 기둥이 썩어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아들의 사업실패로 유화당 옆 종택 남호정사가 경매로 타인에게 넘어갔다. 연이어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편은 병을 얻어 10년 가까이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살림을 정리해 거처를 유화당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유화당과 남호정사에 소장 중이던 많은 양의 고서, 고문서, 유물 등을 도둑맞았다. 그나마 일부라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미리 챙겨두어서다.

종택을 잃은 지 20여 년, 할머니는 밤낮으로 한 가지 생각뿐이다. 허물어지는 유화당을 지키고 종택을 되찾겠다는 것. 팔순이 넘은 고령에다 건강도 좋지 않지만 관공서, 문중, 전문가 등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하는 이유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딸집으로 거처를 옮긴 할머니는 "6·25 한국전쟁 때 종택에는 국군이, 유화당에는 상주경찰서가 주둔했어요. 전쟁 통에도 피난 가지 않고 지켜낸 집인데"라며 "유화당과 남호정사는 칠곡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집인 만큼 꼭 보존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말했다.
글·사진 송은석 시민기자 31691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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