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6] 외국인 출입 엄격 통제된 청진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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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6   |  발행일 2021-02-26 제21면   |  수정 2021-02-26
김일성 동상 촬영 지켜보던 여인 "동상 머리 자른 채 찍지말라, 국가 모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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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 시내의 모습.

4시간가량의 고된 '마사지' 여정을 마치고 청진 시내에 들어서자 길거리에는 군인들 외에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도착한 직후 폭격기 한 대가 하늘 위를 날아갔고 내가 탑승한 차량은 문이 굳게 닫힌 한 장소로 대피했는데 무슨 영문으로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청진 도착한 날 군부대 훈련 진행 돼
차 탄 채 대피소에 한시간 동안 갇혀

시내 박물관엔 구호나무 20개 전시
김일성 부자 숭배 보여주는 유물들

구호나무 지키다 불에 타죽은 북한군
공화국 영웅이라며 팻말 걸려있기도


나는 차량에서 잠시 내렸고 거기서 60대의 한 북한 남성을 만나게 되었다. 그에게 나는 "길거리가 왜 이렇게 썰렁한지…."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왜 '피신'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1년에 한두 번씩 1시간 동안 오후 4시부터 진행되는 군부대 훈련이 진행 중이라고 하며 마침 나쁜 날에 왔다면서 농담을 던졌다. 정확하게 어떤 훈련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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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동상 앞에서 인사를 하는 북한 신혼부부의 모습.


훈련이 끝난 후에야 청진 시내를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시내 한복판에는 김일성 동상이 있었고 한복과 정장을 차려입은 여러 쌍의 신혼부부가 김일성 동상 앞에 꽃을 두고 90도로 인사했다. 결혼식을 마치면 해야 하는 관례였다. 나는 DSLR 카메라로 김일성 동상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촬영했는데 실수로 김일성 동상의 머리가 잘린 상태로 앵글이 잡히자 옆에서 지켜보던 한 북한 주민이 나에게 벌컥 화를 내기도 했다. 김일성 동상의 머리를 자른 채 촬영하는 것은 김일성과 국가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다. 실수였다고 얘기하고 나서 재촬영했다.

이어 동상 옆에 위치한 박물관에 갔는데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이 나의 카메라와 주머니에 있던 모든 소지품을 거둬 갔다. 외부에 절대로 공개가 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말이다. 다행히도 손목에 차고 있던 몰래카메라 시계는 옷으로 가린 채로 출입을 했다.

박물관 로비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현지지도 주요일지' 목록이 빼꼭하게 적혀 있었는데, 함경북도에서만 880번의 현지지도를 했다고 박물관 관계자가 말하며 함경북도 내에서 특히 많은 현지지도가 있었던 청진은 '영광의 땅'이라고 했다. 김정일과 김정숙 동지의 주요일지 목록 역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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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 박물관에 놓여진 '구호나무 영웅들'의 사진 .


박물관 내에 있던 작은방 안으로 들어서자 북한에서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20개의 구호나무들이 있었다. 이 구호나무들은 1930~40년대 항일 빨치산들이 산속에서 껍질을 벗기고 칼이나 먹으로 독립 열망의 구호를 새겨놓은 나무들인데 김일성이 '민족의 태양'으로 숭배되고 이어 김정일은 '백두광명성'으로 예찬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1998년 3월19일 오후 2시에 함경남도에서 산불이 났는데 20명의 북한군들이 불에 타게 될 위험에 처해 있는 이 구호나무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다가 17명이 불에 타죽은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이 방안에는 '구호나무를 부여안고' 희생되었던 17명의 군인들의 사진과 함께 '공화국 영웅상' 팻말이 걸려 있었다. 그 위로 김정일 위원장이 과거에 군부대에서 현지지도했던 사진 한 장이 크게 걸려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전직 교사 출신 남성과의 대화가 이어졌는데 삼성이 생산하는 제품의 종류와 남한과 캐나다의 대학 학비는 얼마인지 궁금해했는데 금액을 듣고 나더니 엄청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군사력과 남한의 경제력이 합쳐진다면 세계 최강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하루빨리 통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또 "북한은 머지않아 남한의 반 정도 수준의 경제력 정도는 달성하리라고 믿는다"고 얘기했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미국에 적대심을 보이면서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로 미국을 꼽았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을 북한처럼 작은 나라가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얘기했다.

이어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것은 이라크가 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며 이를 본보기 삼아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면 절대 안 되며 그럴 일도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내가 북한을 방문했던 시기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며 개성공단 내 북한 근로자가 전원 철수했던 때였던 만큼 남북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다.

전직 교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는데 박 대통령이 해외에서 '조선말'이 아닌 영어로 연설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통역사가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영어를 써가면서 아부를 떠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또 '이명박'에 이어 남북의 경제교류가 끝난 당시 상황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서는 본인들의 아버지와 다름없다고 얘기했고, 나는 "모든 사람이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실수를 하는데 김정은 위원장도 실수를 범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라고 묻자 그런 질문 자체는 북한에서 절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내가 북한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까지 청진은 외국인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 곳이었던 만큼 라선시의 주민들과는 달리 청진 주민들은 나의 시선을 매우 경계하는 듯 보였다. 어느 식당에 들어서니 한 여종업원은 아무도 없는 텅 빈 식당에 홀로 앉아 노래방 기계로 북한 찬양 노래를 부르고 있을 만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 역시 더욱 크게 느껴졌다.

밤이 되면 북한 주민 여러 명은 실내에 모여 조선말로 더빙돼 탱크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는 과거 소련 전쟁영화를 관람하고 있었고, 호텔에 있던 종업원은 김일성 일대기를 다룬 프로파간다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청진에서의 첫날 밤 호텔방에서 당일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나의 다큐멘터리 영화 '삐라' 영상을 컴퓨터 비밀 폴더로 옮기고 난 후에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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