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21세기의 레트로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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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5   |  발행일 2021-03-05 제37면   |  수정 2021-03-05
'라떼'도 입었다는 오버핏 재킷…왜 세련된 느낌이 날까
80·90년대서 영감받은 패션
복고 넘어서 시대문화 반영
대중에게 새로운 유행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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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서 영감받은 젠 스타일. 〈출처 www.wgsn.com〉
디자인 분야에는 다양한 많은 종류가 있지만, 패션디자인은 기능성·용도·사용자(착용자)의 취향뿐 아니라 자기표현의 욕구를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분야다. 많은 사람이 매일 그날의 일정에 따라 자신을 어떻게 보이게 할지 생각하며 의상을 선택한다. 비즈니스 모임이 있는지, 사교모임이 있는지 등 상황에 따라 혹은 편안하면서 캐주얼한 스타일 등으로 TPO(Time, Place, Occasion: 시간, 장소, 상황)에 맞춰 색감, 스타일, 장식성 등을 고려해 희망하는 스타일의 의상을 착용한다.

그러나 '패션'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의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 시대에 유행하고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는 스타일을 나타내므로 패션은 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패션에는 한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보이지 않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특성과 흐름이 담겨 있다. 21세기 즉 2000년대 이전에는 사회적 이슈가 바로 패션에 반영된 경우가 많았다. 걸프전(1990~1991)으로 밀리터리(Military) 룩이, 그리고 1980년대부터 힙합음악의 대유행으로 힙합패션이 유행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문화적 이슈에 따라 그 특성이 직접적인 패션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다수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1970년대에서 영감받은 보헤미안 감성의 패션스타일.〈출처 www.wg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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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서 영감받은 재킷과 레깅스의 패션스타일. 〈출처 www.wgsn.com〉

지나간 시대의 패션을 구분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20세기에는 10년 단위로 구분돼 1910년대, 1920년대, 그리고 1990년대까지로 구분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빨라진 유행 시기와 너무나 다양해진 스타일로 연도적 구분이 어렵고 의미없게 되었다.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고 일반 사람이 제공되는 오프라인 정보만 대면했던 시기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하던 패션이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지구촌에 확산됐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모바일의 확산으로 다양한 글로벌 문화를 경험하게 되고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될 뿐 아니라 SNS를 통해 세계 각국의 개인이 서로 연결돼 특정 환경에 한정되지 않고 전세계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등의 변화로 패션주도권의 원천이 다각화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패션은 한 시대의 사회문화적 경향을 반영해왔다. 절대신의 종교시대였던 중세, 인본주의과 왕족의 시대인 근세, 계몽주의 시대인 근대에서부터 10년 단위로 구분되는 20세기 패션에도 각 시대의 사회적 사상, 문화적 특성, 발전된 기술력이 적용돼 마치 퍼즐처럼 맞춰진다. 현대패션에서도 1990년대 서구문화에 새로운 문화인 아시아의 사상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현대적으로 해석된 젠(Zen) 스타일, 1980년대 여성의 전문직과 사회 진출이 확산된 사회적 특성이 반영된 넓은 어깨의 파워수트(Power suit)와 볼륨이 과장된 파마의 소위 사자머리 스타일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이전인 1970년대 디스코 문화와 연결되는 벨버텀(Bell buttom) 팬츠, 1960년대 젊은 문화의 부상 및 미니멀리즘의 확산과 이어지는 미니스커트, 그리고 1950년대의 2차 세계대전 후 전통적인 여성미를 추구하는 마음을 나타낸 뉴룩(New look)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은 대부분 그 시대적 특징을 반영해왔다.

2000년대 들어 패션의 흐름에 이전과 완전히 다른 특성들이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 세기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100년 단위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들뜬 분위기 때문인지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과 문양이 유행했으나 이후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이 혼용돼 나타나고 유행변화의 시기도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빨라지게 되었다. 또한 재즈색소폰 연주자인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없다. 모두 무엇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이 마치 2000년대 패션을 두고 말한 것처럼 2000년대 패션은 이전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복고 레트로(Retro) 패션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2000년대의 20여 년간은 레트로라는 이름이 패션뿐 아니라 영화, 음악, 인테리어, 생활제품 등에 지나간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에서 넘어온 것들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둘러싸고 있다. 20세기 100년의 기간에도 그 이전의 시대를 반영한 레트로 스타일이 있었으나 패션에만 한정된 경우가 많았고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21세기에 나타난 레트로는 패션과 우리 생활에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또한 패션과 식품, 패션과 커뮤니케이션, 패션과 놀이문화 등 서로 다른 분야가 융합해 더욱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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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유행하고 있는 패션스타일에서 보면 어깨가 넓고 헐렁한 형태의 재킷·코트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영감을 받은 것이지만 이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지나간 시대의 패션을 차용해 변화된 성 역할 등 사회적 특성과 새로운 유행을 제시하는 시장성이 반영돼 있다. 현재의 레트로 문화는 사회문화적 특성과 서로 융합돼 소위 유행을 좀 아는 패션리더뿐 아니라 유행성을 추구하지 않는 대중도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뮤직비디오, 식음료 제품의 라벨, 게임 등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고 소비할 수 있는 대중화가 되었다

패션 의상은 나 자신이 매일 사용하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입은 것을 통해 접할 수밖에 없는 생활제품이다. 학문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지나간 시대의 패션을 조금쯤 아는 것은 이 시대의 경향과 특성을 약간 알게 되는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많이 입는 패션스타일을 보면서 라떼 세대는 '저건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스타일인데?', 그리고 MZ 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이름)는 '저건 언제 것과 비슷한 거지?'라고 궁금증을 가지는 것은 패션을 통해 비교적 쉽게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알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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