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의 문학 향기] 대항해를 앞두고

  • 박주희
  • |
  • 입력 2021-02-26 07:49  |  수정 2021-02-26 08:13  |  발행일 2021-02-26 제15면

이정연
이정연 <시인>

입춘 지나고 우수도 지났다. 우수는 한 해 농사 시작하기 위해 씨앗을 꺼내 보는 시기라고 한다. 교사로서 교사의 일이 농부의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 해'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수에 농부는 씨앗들 만지며 한 해 농사 앞두고 막막하지는 않을까. 잘 봐 달라고 하늘을 올려다볼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업무와 담임이 새로 배정되는 2월은 교사에게 몹시 어수선한 시기다. 새로운 업무 파악, 새로운 동료 교사, 새로 가르칠 내용 준비의 분주함에다 담임으로 맡게 될 학생들의 명단이다. 말하자면 나의 '씨앗'이다. 어떤 특성을 지닌 씨앗인지 모른다. 우수 즈음 교사에겐 막막함에 두려움이 더해진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를 이 계절에 다시 만났을 때 두려움의 근원을 알았다. 나의 씨앗은 농부의 씨앗에 비해 다이내믹하다. 나의 밭은 지뢰밭이다. 예측불허의 일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초임 때는 교사로 제법 길이 나면 학생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 유형에 따라 지도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길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이 씨앗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 일관된 방법이 있긴 하다. 쭉정이가 하나도 없는 다 귀한 씨앗들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온 정성을 다하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특성을 파악하기에도 한 해는 늘 부족하다. 그러니 또 새로운 씨앗 받아놓고 이렇게 막막하고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꺼내 읽는다. '높은 산에 오를 준비를 할 때마다 장비를 챙기면서/ 운다고 고백한 산사람이 있었다 14번이나 최고봉에 오른 그가/ 무서워서 운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비밀을 안 것처럼/ 나도 무서웠다 산 오를 생각만 하면 너무 무서워서 싼 짐을/ 풀지만 금방 울면서 다시 짐을 싼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도/ 울면서 짐을 싼 적이 있다 그에게 산이란 가야 할 곳이므로/ 울면서도 떠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서워 울면서도/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천양희 시인의 '최고봉'을 읽으며 '울면서도 떠나'야할 대항해, 개학을 준비한다. <시인>

기자 이미지

박주희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