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극복' 릴레이 엽편소설] 네번째 글 - 장정옥의 '타묵(打墨)'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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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6   |  발행일 2021-02-26 제36면   |  수정 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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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과 가려짐. 그것은 승화와 다를 질감을 갖고 있다. 그건 말로 하는 사랑, 말로 하는 정의, 말로 외치는 평등과 같은 것이다. 땅의 것이 하늘에 닿아 온전히 다시 땅의 것으로 돌아온 기운만이 생생한 초점을 갖게 된다. 사람의 성품이란 것도 그런 게 아닌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다짐만 하는 지식인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정작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말없이 안중근처럼 브라우닝 권총을 들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러 하얼빈역으로 내달리는 실천궁행하는 의인은 드문 것이다. 내면에 도사린 수많은 적의(敵意), 하지만 그걸 내보이는 자는 드물다. 대다수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을 것이다. 예술이 진경에 든다는 일은 기예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예술을 앞세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고 도모하려고 하는 저급한 자신의 저의를 얼마만큼 도려내는가에 달려있다. 글·사진 = 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스물여섯 살이 되도록 아비 등골만 빼먹고 사는 아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서예밖에 없으니 죽기 전에 아들이 만든 병풍 한 번 둘러보자며 아버지는 농담 같은 진담을 했다.

"난 네 놈이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무 튀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버지에겐 서예가 그저 한문을 옮겨 쓴 붓글씨에 불과했다. 백 마디 말보다 '만자행(萬字行)'으로 된 병풍을 보여주면 서예의 실체를 깨달을까 해서 작업을 서두르기로 했다.


회갑을 맞은 동갑내기 열명이 삼년 동안 모은 곗돈으로 단체여행을 갔다. 3박4일 동안 무탈하게 잘 놀고 왔다더니 한밤중에 고열에 빠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를 위해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두 분은 격리병동으로 실려 가고 동네에 방역팀이 들이닥쳤다. 회갑여행에서 감염된 동갑내기들 때문에 진단검사를 받은 사람이 백 명 이상이고 어머니를 비롯해서 덤으로 실려 간 사람도 여러 명이었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격리병동에 있는 아버지와 화상통화를 했다. 격리 기간이 끝나면 생일잔치 해주겠다니까 아버지가 힘없이 웃었다. 회갑 선물로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병풍을 언급하셨다.

"갑자기 웬 병풍이에요?"

스물여섯 살이 되도록 아비 등골만 빼먹고 사는 아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서예밖에 없으니 죽기 전에 아들이 만든 병풍 한 번 둘러보자며 아버지는 농담 같은 진담을 했다.

"살아서 병원 문을 나갈까 싶잖다."

겨드랑에 뾰라지가 나는가 싶더니 대상포진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진단검사와 열체크 등의 엄격한 과정을 거치고서야 겨우 동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야 병에 감염되어 실려 갔다 해도 남아 있는 개와 열대여섯 마리의 닭이 무슨 죄람. 닭장에 모이를 듬뿍 주고 개밥도 주었다. 사람이 살아야 집짐승도 산다.

약 냄새 밴 집에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마당을 겉돌고 있으려니 내 심정이 밥도 못 얻어먹는 흰둥이만큼 처량했다. 답답한 속이나 달래자고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온종일 백리나 되는 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이 '타묵(打墨)'이었다. 아버지 회갑연에서 일필휘지로 먹을 치는 타묵 퍼포먼스로 혼란에 빠진 마을 사람들의 기를 살려줄 생각이었다. 붓이 노래하고 먹이 춤추는 장면을 보면 아버지도 나를 인정해주시겠지. 사각 프레임에 갇혀 있는 서예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훨훨 날게 해주는 게 내 꿈이었다.

자아작고(自我作古). 나로부터 옛것을 삼는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스물여섯 해를 보내는 동안 한 짓이라곤 글씨 쓴 것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할 일 없으면 밭에 와서 일이나 거들라고 했다. 밭일이 힘들긴 해도 밥은 굶지 않는다고. 주야장천 글씨만 쓰는 아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씀을 하실까.

일단 병풍부터 만들기로 했다. 단골 필방에서 2합 장지 열 묶음과 고려지 다섯 묶음, 청화먹물 다섯 박스를 주문하고, 시장에 가서 흰 모시적삼도 샀다.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서예를 향한 내 생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아들의 행세가 시답잖아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도 가르치는 제자가 있고, 혼신의 힘을 기울인 작품이 예술회관 전시실에 걸릴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네 놈이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너무 튀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평범하게 살기보다 '나답게 살고 싶다'고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아버지에겐 서예가 그저 한문을 옮겨 쓴 붓글씨에 불과했다. 백 마디 말보다 '만자행(萬字行)'으로 된 병풍을 보여주면 서예의 실체를 깨달을까 해서 작업을 서두르기로 했다.

만자행의 착상은 담뱃갑에서 시작되었다. 타들어가는 속을 달랠 길이 없어서 담배만 피워댔다. 마지막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무심결에 담뱃갑 은종이에 '묵(墨)'자를 빼곡하게 써넣는 가운데 착상된 것이다. 평범한 작업은 싫은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려니 구성이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를 수긍하게 할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

자기 것을 만든다 함은 알을 깨는 행위와 같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인고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게 모든 예술가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예술가들이 피해갈 수 없는 단 하나를 들라면 그게 바로 자기만의 것을 갖는 일이다.

나를 살릴 묵인지 죽일 묵인지 알 수 없었다. 은박지를 묵으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아버지의 병풍에 무엇을 써넣어야 할지 답을 얻었다. 8곡 병풍을 목숨 '수(壽)'와 복 '복(福)' 그 두 자로 가득 채우는 것. 그게 바로 담배 한 갑을 피우고 얻은 만자행이었다. 만자행은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고 두꺼운 내 껍질을 깨는 행위였다.

천 개의 수와 천 개의 복으로 이루어진 병풍을 그리며 나는 땀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세상 모든 일 중에서 자신을 견디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임을 실감했다. 한 자 한 자가 그대로 코로나 팬데믹을 건너는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고 기도였다.

자승자강(自勝者强).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폭에 걸쳐 목숨 수 자를 쓰고 다섯 째와 여섯 째 폭에 복복 자를 써서 동그라미에 가두었다. 큰 글씨 주위로 논바닥에 모를 심듯이 작은 글씨 수만 개를 심었다. 글자 하나로 병풍 한 폭을 채우기 위해 수없이 마음을 닦아야만 했다. 일필휘지로 한달음에 쓴 큰 글씨보다 깨알 같은 글자 수천만 개가 더 어렵다. 글씨를 한참 쓰다 보면 글씨가 개미처럼 기어 다니기도 한다. 방바닥 가득 글씨가 바글거리는가 하면 내 팔과 목, 얼굴로 마구 기어오른다. 그쯤이면 붓을 놓지 않을 수 없다. 마당으로 나간 나는 양동이 가득 물을 받아서 머리부터 흠뻑 뒤집어썼다. 그리곤 뒷산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가면 나무가 있고, 바람과 구름, 들꽃을 비롯한 새들의 지저귐이 있다. 자연의 소리가 내 혼란을 가라앉혀 주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글씨도 음악처럼 빠르고 느리게, 길고 짧게 붓의 움직임대로 흐르는 리듬을 갖고 있다. 그 흐름을 거슬러 가장 높은 곳에 닿고 싶었다.

오후가 기울도록 숲속을 걸어 다니다 뱀처럼 너럭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계곡 물소리에 넋을 빼고 있으려니 지나가던 스님이 말을 붙였다.

"걱정이 많은가 보구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글씨만 쓰고 있어서 되나 싶고요."

'춤추는 불꽃은 혼돈에서 탄생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라투스트라의 말이다. 스님 눈에도 내가 촛불처럼 흔들리는 게 보였던지 내 곁에 걸터앉았다. "바람에 꺼진 촛불은 다시 불을 붙이면 되지만 사람은 기가 한 번 꺾이면 본래대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면서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함부로 방치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손가락을 깨물어 바위에 '자승자강(自勝者强)'을 썼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서서 바위에 쓴 붉은 글씨를 내려다보았다. 내 안에 저장된 모든 글씨가 나를 이루는 실체였다. 비가 오면 씻겨 내려갈 테지만 나는 바위에 쓴 붉은 글귀를 기억에 아로새겼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는 것을 아는 자라야 무엇이 쓸모 있는지 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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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옥 약력1997년 '해무'로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2008년 여성동아 제40회 장편소설 공모에 '스무 살의 축제'가 당선. 2019년 소설집 '숨은 눈'으로 제10회 김만중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스무 살의 축제' '비단길' '고요한 종소리' '나비와 불꽃놀이' 외 산문집 '유월의 어느 시간들' 이 있다.

타묵 퍼포먼스를 하는 날 마을회관 앞에 자리를 깔았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소문을 듣고 달려온 사진작가들과 기자들의 카메라가 빼곡했다. 주인공 없는 회갑연에 봉사하러 온 어머니회 회원들이 빙 둘러섰다. 다 좋은데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날씨였다. 걱정스레 하늘을 올려보았다. 받아놓은 날을 미룰 수도 없고. 어쩌면 용이 승천하는 걸 보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깔아둔 화선지야 비를 맞아도 상관없지만 병풍은 비를 맞으면 안될 것 같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구경만 시키고 아버지 방에 고이 모셔 두었다. 먹이 담긴 항아리에 큰 붓을 담글 때 손등에 빗방울이 뚝 떨어졌다.

나는 무용지용을 계속 읊조렸다. 무용지용은 '주변의 쓸모없는 땅이 있기에 디딜 땅이 쓸모 있게 된다'는 의미로 장자 '외물편'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 뮐세~) 대목을 쓰던 중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나머지 글자를 쓰던 중 음악이 울려 퍼졌다.

"타묵을 위해서 우리도 춤출까?"

"좋지! 비를 맞으며 저렇게 일필휘지 하는 분도 계신데…."

어머니회 회원들이 비를 맞으며 춤을 추었다. 주인공 없는 회갑연은 계속되고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어머니들의 축하에 힘입어 타묵 시나위가 격렬하게 출렁거렸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비가 먹을 씻어내려 화선지 위로 검은 물이 번졌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얼굴을 적셔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글씨를 써내려갔다.

낙관을 찍을 때 화선지에는 글씨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춤추는 어머니들의 치맛자락이 흘러내린 먹물에 젖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먹물 든 치맛자락을 보며 소녀처럼 깔깔대는 어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드높았다. 어머니들이 비를 피해서 마을회관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나는 화선지 위에 홀로 서 있었다. 뒤를 돌아봤다. 빗속을 뚫고 길 아래서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걸어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아버지 하고 뛰어갔더니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검은 용이 한 마리 빗속을 헤치고 승천하는 중이었다. 화선지가 하얗게 비어 있었다.

■ 이 소설은 서예가 율산 리홍재의 삶을 모티프로 해서 창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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