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2020 세대공감 공모전'] 銅賞 대구여상 김규민 학생 수기…"다가오길 묵묵히 기다려주신 할매·할배 사랑해요"

  • 박종문
  • |
  • 입력 2021-03-01 07:44  |  수정 2021-03-01 07:45  |  발행일 2021-03-01 제12면
낯가리는 성격 탓 조부모 멀리해
요양원 봉사 등 계기 마음 달라져

25191833-DE4D-4248-A65F-E7F47811B027
김규민 학생 가족 모임 모습. 〈김규민 학생 제공〉

어릴 때부터 낯가리는 제 소심한 성격 탓에 할머니와 친해질 계기가 없었습니다. 또 할머니와 대화할 일이 많이 없었고, 그 때문에 친해질 수 있는 계기는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세대 사람들은 저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가끔 사촌들과 모두 모여 자는 날이 올 때면 언니와 사촌들 모두 할머니 옆에서 자겠다며 투닥투닥 할 때 저도 너무 부러웠지만 이미 두꺼워져 있는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이런 저이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집에 갈 때가 되면 항상 쌈짓돈을 챙겨주셨습니다. 항상 이것저것 다 챙겨주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의 성격을 많이 탓하기도, 달라져 보기로 혼자 결심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포기'라는 단어였습니다. 아빠가 항상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라고 말씀하실 때면 저는 항상 미뤘고, 아빠·가족과의 갈등도 점점 깊어졌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이런 저에게도 가장 큰 깨달음을 주고 변화를 만들어준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할머니와 함께하는…' 이라는 주제의 학교행사였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저랑은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프로젝트를 학교에서 제시하게 된 이유가 각자 세대를 공감하기 위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에서 '세대 공감 이해하기'란 강연은 저에게 깨달음을 줬습니다. 그 강연에서는 '조부모님께 속마음을 표현하는가' '자주 만날 수는 없어도 안부 전화를 자주 하고 있는지' 같은 질문을 저에게 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할머니·할아버지는 저랑 다르고 통하는 게 없어서 대화도 행동도 안 통하는 걸요"라고 답했고, 강사 선생님께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이를 두고 그런 말을 한다"며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그 어떤 노력도 생각도 하지 않고 세대 차이라는 인식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요양병원에 봉사하러 갔던 일입니다. 15세 때 친구가 요양병원 봉사를 저에게 추천해줬습니다. 봉사하러 가보니 요양병원에 계시는 할머니·할아버지께서 웃으며 너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서로 얘기를 하다 보니 막상 안 맞는 점보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더 많았습니다.

봉사하던 중 그곳에 계시던 한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 저의 기억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다 알어. 느그들이 서툴러서 아직 말을 못 하는 거지 할매랑 말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도 다 알어~. 니가 우리한테 와서 말동무 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이쁜디 너네 할머니·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쁜 손녀 보고 얼마나 좋아하실꼬…." 저와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하고 싶고 그럴 거라고, 잘해 드리라고 말씀해 주셨던 할머니의 한마디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해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 곳은 학교도 외부도 아닌 바로 제일 가까운 '집'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코로나 19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할머니 댁으로 가던 저희의 발걸음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많은 시간이 지나고 저는 할머니 댁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왜 이제야 왔냐고, 우리가 오기 며칠 전부터 저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할머니께서도 저에게 많이 보고 싶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해드린 것도, 그저 철없던 손녀였지만 그만큼 저를 많이 생각해주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것저것 챙겨주실 때 마냥 귀찮아서 괜찮다고 투정만 부렸던 철없던 저를 깨달았습니다. 그렇게라도 더 많이 챙겨주고 싶고 더 잘 해주고 싶어하셨다는 것을 말이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속마음을 뒤늦게 깨달은 그날 저는 집에 와서 울며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 할머니·할아버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묵묵히 믿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저희 할머니·할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제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말, 그러나 아직도 전해드리고 싶은 말 "할매·할배, 내가 많이 사랑해"를 일찍 천국에 가신 친할아버지께는 직접 전해드릴 수 없지만 누구보다 멀리서 저를 지켜봐 주실 분인 것을 잘 알기에 저는 지금이나마 사랑한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기자 이미지

박종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