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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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1 07:50  |  수정 2021-03-01 07:53  |  발행일 2021-03-01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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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교실 이삿짐을 옮기는데 달팽이놀이를 하느라 까르르 폴짝 거리는 아이들 소리가 좋아 한참 서서 듣다가 사진에 담았다. 나는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이 왜 선생님이 되었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게 좋아서라고 대답한다.

3월부터 봄나들이 숙제를 내서 쑥을 뜯어오게 하고 쌀 1만개를 하나씩 세어오게 해서 맛없는 쑥떡을 만들어 먹는다. 쉬는 시간을 빼먹으면서 싫어하는 공부를 시키고 모르면 무식하다고 놀린다. 농사를 짓고 학교 숲에 데리고 가서 온갖 열매를 먹게 하고 잎을 맛보게 하고, 학교에 피는 꽃 사진을 찍으며 관찰하고 또 시를 쓰게 하고선 꽃에게 찾아가 읽어주라 하고, 선생님도 일기를 쓴다면서 아침마다 귀찮은 일기를 쓰게 하더니 기어코 책 출판을 한다. 리코더·단소를 못 불면 나머지를 해서라도 강제로 연습하게 하고, 주말에 학원 째고 자연으로 문화유산을 찾아 체험학습 가자 하고, 책 안 읽으면 집에도 안 보내준다 하고선 기껏 돌 사탕을 간식으로 주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게 하는 일이 교사에겐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나는 안다. 그런데 이 즐거운 일을 나는 2년간 할 수 없게 되었다. 세 번째다. 대학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 '삶과 믿음의 교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읽고 이오덕 선생을 알게 된 게 문제였다.

내가 교직에 첫발을 디딘 1986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중학생의 유서는 교사가 된 나를 그만두지 않았다. 87년 6·10항쟁을 겪으며 피 끓는 청년교사인 나는 선배들 꾀임에 순순히 따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Y교사협의회에 참여했다. 뒤이어 전국초등교육자협의회, 전국교사협의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했다. 89년 1천500명이 해직될 때 나는 의무복부 7년을 채우지 못하면 군입대를 하게 돼 탈퇴를 하고 살아남았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91년 나는 뒤늦게 해직교사가 되었다. 당시 해직 사유를 보면 아이들이 겨레의노래 공연에 노영심·서유석 가수와 같이 '우리들 마음이 어떻게 생겼을까, 너와 나 달려가자, 이 세상 어딘가에'를 공연하게 했고, 음악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같은 노래를 가르치고, 학교장 명령을 어기고 어린이날큰잔치를 연 것, 대구MBC 방송에 출연한 것, 일기장 검사를 거부한 것 등이 징계 사유가 돼 아이들 곁을 쫓겨났다. 해직이 된 3년 동안 나는 줄지어 체험학습을 가는 아이들만 보고도 울었다. 나에겐 아이들은 그런 존재였다.

복직이 된 뒤 전교조 일로 1년간 아이들을 떠나 살았고, 이번에 다시 전교조 일로 아이들 곁을 떠난다. 2년 뒤 돌아가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게 딱 3년이 전부다. 나는 담임인 게 너무 좋아서 그동안 교과전담도 해보지 않았다. 30년 전에 비해 슬퍼 울지는 않겠지만 나는 과연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잘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교사들과도 헤어지는 인사를 하기 싫어 3월 초에 '코로나를 이겨내는 아이들' 시집을 갖고 오겠다, 4월엔 나무이름표를 달아 주러 오겠다고 하고, 수업 중에 자료인사로 불러달라고 부탁을 하고 학교를 나왔다. 운동장 가에 앉아 시 한 편을 쓴다.

'학교를 잠시 떠난다/ 내게 두 해는 길지만 잠시라 하고 싶다/ 2년 뒤 쓸 짐을 탈의실 구석에 가득 쌓아두고 나머진 차에 가득 채워서 전교조로 가져간다/ 딱 30년 전에도 나는 동화책은 도서관에 보내고 짐을 교실 구석에 두고 나왔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교사들이 그 짐을 3년 동안 지켜주었다/ 짐을 정리하고 학교를 둘러본다/ 매화 산수유꽃이 활짝 피고/ 참꽃 모과나무 화살나무가 먼저 새순을 내민다/ 텃밭 유채 상추 파 부추도 겨울을 잘 견뎌내고 생생하다/ 다시 돌아와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은 3년이 전부다/ 마음이 헛헛해 혼자 운동장 앞에 우두커니 앉아 글을 쓴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지금도 이런데 정년을 하고 진짜 학교를 완전히 떠나면 마음이 어떨까? 나는 정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게 맞다. 모든 교사는 다들 나보다 아이들을 더 좋아할 것이다. 나는 당분간 이런 착하고 친절한 교사들이 아이들과 더 행복한 교사로 살도록 있는 힘을 다해 도우려고 한다. 코로나를 이기고 지구를 지켜낼 아이들이 내일이면 다시 학교로 온다. 다들 힘내시라. 대한민국 학교 만세!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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