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매실나무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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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2   |  발행일 2021-03-02 제23면   |  수정 2021-03-02

어느 해 이른 봄. 고교 교사이기도 한 시인이 매화가 만발한 전남 광양시 매화 마을을 찾았다.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로부터 매화와 매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시인이 물었다. "이 나무 이름은 매화나무가 맞나요, 아님 매실나무라 해야 되나요?" 대개 꽃이 피었을 때는 매화나무로, 열매가 달려 있을 때는 매실나무로 부른다. 꽃이나 열매를 전제로 하지 않을 때는 이야기의 주제에 따라 혹은 화자가 비중을 두는 쪽을 따라 이름을 부르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나무의 이름을 특정하기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다. 산에 가면 자주 만나는 근육질의 서어나무의 경우 '어'를 넣어야 할지 빼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수 있다. 'ㅡ'와 'ㅓ'를 구분하는 데 애를 먹는 영남 사람들에게 음나무는 강적이다. 필자의 주변에는 음나무보다는 엄나무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다. ㅡ와 ㅓ를 명확히 발음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시가 많고 봄에 새순을 나물로 먹는 그 나무의 이름을 그냥 엄나무로 확신한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이라는 게 있다. 국립수목원과 한국분류학회가 식물의 이름을 통일하기 위해 구성한 국가식물목록위원회가 정리한 목록이다. 이에 의하면 매실나무·서어나무·음나무가 표준이다.

매화는 옛날부터 조상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왔다.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맨 앞에 불려진다. 매화가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그 나무의 희소성과 나이 들수록 아름다움이 더해짐, 그리고 꽃봉오리가 오므라져 있는 자태 때문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렇게 깊은 뜻까지 헤아리다 보면 매화를 즐기기 어렵다. 부담만 된다. 그리고 매화와 벚꽃을 구별해 내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이육사 '광야')라고 했으니 추울 때 피는 꽃은 매화, 따뜻할 때 피는 것은 벚꽃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전국에 매화가 한창일 때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향을 발하는 이때만큼은 매실나무를 매화나무라 부르고 싶다. 그런들 무슨 흠이 되랴.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나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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