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기본소득 도입 가능한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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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3   |  발행일 2021-03-03 제27면   |  수정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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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수년 전부터 기본소득제에 대한 찬반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다 코로나19 재난 국면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소득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정치 이슈로 급부상했다. 경기도는 조례로 '청년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경기도지역 만 25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원씩(연간 1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재산·소득·고용 등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준의 생활비를 똑같이 지급하는 제도인데, 220년 전에 주창된 담론으로 당시 취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작동원리나 재정의 측면에서 기존의 복지국가와 충돌한다는 데 있다. 즉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무조건적으로 같은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므로 각종 사회적 위험에 제도적으로 대비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와 작동원리가 다르다. 기존 사회보장의 상당 부분을 폐지하지 않는 한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의 기본소득 재원을 확보할 수가 없다. 예산절감과 조세감면 축소를 통해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의 양은 미미하고, 이것도 기존 복지국가의 확립을 위해 사용하는 게 맞다.

이 도지사는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를 그대로 둔 채 추가적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할 경우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는 데 써야 할 소중한 재정을 푼돈으로 날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는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의 목적·취지에 반하는 '사이비 기본소득'이자 포퓰리즘 정치일 뿐이다.

기본소득제는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충분성의 요건에 맞추어 모든 개인에게 기본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인 연간 100만원은 보편성·정기성·충분성 요건에 위배되므로 기본소득이 아니다. 이 도지사는 사회보장제도를 잘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소득의 본질적 개념조차 왜곡하면서 그럴듯한 말로 선거에서의 득표를 위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본다.

이 도지사는 1년에 50만원 또는 1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빚에 쪼들리는 대다수 서민에게 4인 가구 기준 연 200만~400만원은 엄청난 거금"이라고 말했다. 이 도지사가 진정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빚에 쪼들리는 서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국민에게 연 200만~4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서 연 2천만~4천만원을 지급하자고 주장해야 한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의식주와 의료·교육 등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국가가 보장하는 보편적 사회보장을 채택하고 있으며, 기본소득 도입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럽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충분성 요건이 결여된 푼돈이나 보편성 요건이 결여한 일부 인구 대상의 현금 지급을 기본소득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것들은 기본소득의 목적과 취지에 반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2016년 스위스 국민투표다. 월 2천500스위스프랑(30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안이 국민투표에서 76.7%의 반대로 부결됐다. 국민소득 8만달러가 넘는 나라조차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를 폐지하지 않고는 재원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인데,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을 채택한 나라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기본소득 도입은 실현 가능성도 없거니와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제도 확립을 방해할 뿐이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 도지사 같은 사람이 현재 대선후보 지지율 1위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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