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폐비닐이 기름 된다

  • 장용택
  • |
  • 입력 2021-03-03   |  발행일 2021-03-03 제27면   |  수정 2021-03-03

코로나19와 동행한 지도 1년이 넘으면서 골칫거리가 하나 늘었다. 배달음식을 주문하면 딸려오는 엄청난 폐비닐 때문이다. 겉봉투에 모두 싸서 버릴 때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 같아 괜스레 죄책감마저 든다. 봄을 맞은 농촌에는 시커먼 폐비닐이 동네 어귀 집하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미처 치우지 못한 비닐이 논밭을 뒹굴고 있어서 흉물스럽다. 비닐은 자연분해에 수백 년이 걸리며, 해양오염 장본인인 인간 입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두려움마저 든다. 게다가 지난해 상반기 동안 비닐사용량이 전년 동기보다 15%나 늘었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이 와중에 낭보가 들려왔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최근 폐비닐에서 고품질의 기름을 뽑아내는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고 한다. 400~500℃로 가열된 반응기에 잘게 자른 폐비닐을 넣으면 열분해 과정을 통해 기체가 발생하며, 이 기체를 식히면 중질유나 경질유를 채취하는 원리를 응용한다. 석유에서 원료를 추출해 비닐을 만드는 과정을 역(逆)으로 이용했다. 1t의 폐비닐에서 600ℓ(540㎏)를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 공정에 사용되는 폐비닐의 경우 따로 씻을 필요가 없어서 오염된 비닐이라도 분쇄하기만 하면 공정에 바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름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찌꺼기도 다른 시설이나 반응기의 열에너지 원료로 리사이클링이 가능하다. 일석삼조에 다름없다. 이 반응기를 통해 하루 약 2t의 폐비닐을 처리할 수 있으며, 2년 후엔 하루 10t 규모의 처리시스템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 연간 폐비닐 배출량이 약 200만t이니, 이런 규모의 처리시스템을 약 5천 기만 갖추면 전량 처리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폐비닐 무게 기준으로 약 54%의 경제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 상용화 가치가 충분하다. 또 환경오염을 막는 무형의 비용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절감하는 기술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공식 발표인 만큼 신뢰가 간다. 연구진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장용택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