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꽃과 운명…꽃을 사랑한 선비, 꽃처럼 살다 꽃처럼 지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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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5   |  발행일 2021-03-05 제15면   |  수정 2021-03-05
옛 선현, 난·매화 관조하며 진리 구해
이황·허균 등 조선 선비 100인 선정
꽃이 그들의 운명에 미친 영향 살펴

설중매
최근 대구 앞산에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린 가운데 홍매화가 춘설에 덮여 있다.

'시냇가에 자란 철쭉꽃/ 성품 진실로 위험하고 이상도 하다/ 복사 오얏 피는 곳도 좋아하지 않고/ 문석(文石)계단은 더 말해 무엇하랴/ 바위틈에 깊게 뿌리박고 사는/ 너의 뜻 누가 알겠느냐.(중략)/ 영광이 없으면 치욕이 없나니/ 득과 실이 있는 것은 마땅한 거네/ 궁박하게 사는 네게 말해주노니/ 배고프고 추운 것을 싫어 말게나.'

상주 출신으로 대구부사와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이조판서, 대제학에 오른 조선중기 유학자 우복(愚伏) 정경세(1563~1633)가 철쭉을 감상하며 지은 시다. 우복처럼 철쭉꽃을 이렇게 자상하게 읊은 시는 없다.

"매화나무에 물을 주거라." 퇴계 이황의 마지막 유언이다. 퇴계는 매화를 단순한 식물로 보지 않고 '반려화'로 여겼을 정도다. "매형(梅兄·매화)에게 불결할 터이니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설사병으로 방안에서 대변을 보게 되자 매화를 치우게 한 적도 있다. 퇴계는 72제 107수의 매화시를 지었으며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을 엮기도 했다.

'오직 매형(梅兄)의 청아한 지조와 차군(此君·대나무)의 굳센 절의만은 비와 이슬에 영화로움을 빌리지도 않았고 눈과 서리에도 오만하게 보았도다.'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의 시다. 평소 매화와 대나무를 통해 지조와 절의를 강조했는데, 그는 결국 죽음으로 이를 실천함으로써 사육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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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지음/ 희고희고/ 642쪽/ 2만6천원

이 책은 꽃을 사랑한 선비 100인의 꽃에 얽힌 스토리를 담아냈다. 정원을 가꾸며 꽃을 사랑한 저자는 꽃을 사랑한 조선 선비 100인이 남긴 글과 현장을 찾아 사색하며 그들이 어떤 꽃을 어떻게 사랑하고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떤 운명으로 살았는지를 탐구했다. 또 꽃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밝혔다.

1장 '꽃이 왜 날 저버리겠는가'에는 매화처럼 역경을 이겨내다(정도전), 매화와 대나무처럼 살다 가다(성삼문), 꽃과 술로 손가락질을 잊었다(서거정) 등 14명의 선비들이 꽃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살폈다.

2장 '꽃 위에 떨어진 눈물도 짜다'에는 난초도 속물로 변했다(김종직), 살구꽃 아래 울부짖다(남효온), 조선시대 가장 매화를 사랑했다(이황), 매화 밑에 모란을 심었다(조식) 등 14명의 선비와 꽃에 관한 이야기다.

3장 '꽃 한 송이가 술 한 잔이었다'는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셈하다(정철), 꽃길이 임진난을 불렀는가(김성일), 해어화를 죽도록 사랑했다(임제) 등으로 구성했다.

제4장 '이 꽃 핀 가지는 어찌하겠소'에는 대와 매화, 솔과 국화뿐이로다(박인로), 꽃 감상은 어떻게 하는가(허균), 국화를 가꾸며 개혁을 꿈꾸다(김육)가 나온다.

5장 '꽃의 뜻이 곧 내 뜻이었다'는 매화 언 가지에 눈물 흘리다(허목), 딱따구리처럼 꽃을 쪼았다(심사정) 등이 등장하고 6장 '핀다 핀다 내 꽃이 활짝 핀다'와 7장 '무심한 꽃들도 사랑은 안다'에는 꽃을 가꿈도 선정이다(박지원), 매화에 미친 바보였다(이덕무), 지기가 없는 꽃은 없다(이가환), 손때 묻은 꽃이 아름답다(정약용) 등 실학자와 매화 같은 사람 없을까(황현), 나라도 없는 놈이 글까지야(홍명희) 등 구한말 인물과 꽃에 얽힌 내용이 들어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선비들은 학자, 정치가, 관료, 화가, 은자 등으로 다양하며 대부분 개성적인 삶을 살았다.

저자는 선비들이 남긴 문집 350여권과 조선시대 인물전기를 중심으로 꽃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았다. 저자는 우리 선조들이 꽃을 관(觀)으로 보았다고 했다. 간화(看花)가 아니라 독화(讀花)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관(觀)은 관조(觀照)의 의미다. 목(目), 견(見), 시(視), 간(看)보다 형이상학적이다.

관조는 특정한 견해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의 성품과 진리의 세계를 비추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옛 선비들은 꽃에서 마음의 양식을 얻고 그 마음을 뚫어보았다. 꽃을 통해 고난을 볼 줄 알았고, 그것에 감동하며 지혜를 얻고 깨달았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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