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의 문학 향기] '멋진 신세계'는 지금, 여기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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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5 07:47  |  수정 2021-03-05 08:16  |  발행일 2021-03-05 제15면

이정연
이정연 <시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전은 열아홉 살들이 아닐까? 이 사회의 온갖 욕망과 모순이 응집돼 있는 열아홉 살. 정작 본인들은 경쟁의 바지랑대 끝에서 하루하루가 힘든데, 그 외 가족 구성원들은 그의 심기를 살피느라 노심초사다. 얼마 전 대한민국 '교육수도' 대구에서도 '명품 수성구' 모 여고에 다니는 아이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주변에 피임 시술을 받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이른바 팔뚝피임이라는데 성냥개비처럼 생긴 걸 팔뚝 안쪽에 집어넣으면 3년간 생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공부에 방해가 된다면 어떻게든 제거해야 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 높지 않은 34층짜리 잿빛 건물 중앙 출입구 위에 '배양 및 사회 기능 훈련 런던 센터'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로 시작하며 '인간 배양 장치' 내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포드 기원 623년이 배경이다. 1913년 세계 최초로 공장에 벨트 컨베이어를 설치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포디즘이 지배하는 세계다. 그 세계에는 정확한 계산 하에 인간도 유리병에 배양해 대량 생산한다. 알파 베타 델타 감마 엡실론으로 계급을 나누고 각 계급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끝없이 수면 학습을 시킨다. '장미'라든가 '책'에 관심 가지지 않도록 아기에게 전기 충격을 주기도 한다. 혹시라도 기분이 안 좋아지면 '소마'라는 약을 먹고 다시 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최하위 계급 엡실론들은 보카노프스키 처리를 통해 최대 아흔여섯 명까지 필요한 만큼 일란성 쌍둥이로 만들 수 있다. 그들에게 사회의 기본적인 일을 시키고 하루 일이 끝날 때마다 소마를 배급한다. 슬픔이 없는 세계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코로나19가 점령한 세계에서 1년을 살아가며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을 읽으면 그 끔찍함에 놀라 현재 상황을 감내할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다. 매끄러운 물질문명을 풍자하기 위해 20세기 초반의 작가가 쓴 이야기는 10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의 주범인 온갖 쓰레기 외에도 기레기, 검레기에 이제 의레기까지 노골적인 욕망의 쓰레기가 가득하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반성과 성찰 없는 현실을 보면 다음 세기까지 지구에 인류가 살아남아 있을지부터 걱정해야 할 판에 26세기를 설정하고 글을 쓴 작가의 낙관이 부럽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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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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