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기본소득 논쟁, 먼저 개념부터 확인하라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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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5   |  발행일 2021-03-05 제22면   |  수정 2021-03-05
기본소득, 소액으로도 충분
예산문제 발생할 여지 없어
공유富로 생겨난 소득 분배
복지수단이 아닌 권리 보상
정치적 논쟁 진실성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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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요즘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공격이 강하고 매섭다. 여야 잠재 대권 주자들도 줄줄이 반(反)기본소득 대열에 가세해 기본소득의 문제점을 지적하니 말이다. 주요 대선 주자가 다 나섰을 뿐만 아니라 비판 내용도 거칠고 집요해서, 기본소득을 대표 브랜드로 내세운 이재명 경기도지사로서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논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눈에 들어온다. 기본소득의 개념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공방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다른 개념이 들어 있는 상황에서 논쟁을 벌이면 생산적인 결론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여야 잠재 주자들은 충분성을 기본소득의 필수 요건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이 도지사가 밝힌 기본소득 로드맵을 두고 한쪽에서는 지급액이 너무 적다고 공격하고, 다른 쪽에서는 엄청난 예산이 든다고 비판한다. 김세연 전 의원이 이재명 표 기본소득은 용돈에 불과하다고 비아냥댔고,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재명의 장기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공박한 데는 이런 흐름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이런 유(類)의 비판은 모두 과녁을 벗어났으니 말이다. 오늘날 세계 기본소득론자들은 처음에 소액으로 기본소득을 시작해도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다. 아니, 현실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은 그렇게밖에 진행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대표적 기본소득 이론가 판 파레이스는 이를 '부분적 기본소득'이라 부른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를 대체한다고 여기는 대선 주자도 있다. 물론 역사상 기본소득론자 중에는 기존 복지를 대체할 목적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대표적이다. 프리드먼은 1960년대 미국에서 '빈곤과의 전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여기저기서 새는' 복지지출을 아낀다는 명분을 내세워 마이너스 소득세를 제안했다. 이 제도는 사실상 기본소득과 원리가 같다. 세계 학계에서는 이를 우파 기본소득으로 분류한다. 가끔 외국의 극우 정치인이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은 바로 이 유형이다.

하지만 이 유형은 주류가 아니다. 기본소득의 원조로 평가받는 토머스 페인이나 토머스 스펜스는 기본소득을 복지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기본소득이란 시혜가 아니라 권리에 대한 보상이었다. 원조 기본소득론자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사회 안에 토지, 자연자원, 환경 등 사회 구성원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공유부(common wealth)가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주주처럼 모든 국민은 공유부에 대해 한 주씩 가지고 있으므로, 주식회사가 기업 이윤을 주주에게 배당하듯이 공유부에서 생기는 소득을 일정 부분 환수해서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기본소득론의 주류는 페인과 스펜스의 입장을 지지한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기본소득에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든가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기존의 복지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공유부로부터 조세가 걷어지는 만큼 기본소득을 분배하기 때문에 예산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고, 복지제도와는 별개의 트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으로 인해 기존 복지가 위축되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정치적 공격은 내용의 진실성과 무관하게 행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처럼 벌어진 정책 논쟁의 결말이 허무할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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