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모리타니안…한순간에 테러리스트가 된 지옥같은 고통과 여정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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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9   |  발행일 2021-03-19 제39면   |  수정 2021-03-19

모리타니안

9·11 테러 두달 뒤, 고향인 모리타니 공화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던 슬라히(타하르 라힘)는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돼 어디론가 끌려간다. 빈 라덴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사촌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유로 기소도 재판도 없이 6년째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 중이다. 그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가족의 의뢰로 모리타니의 변호사들은 미국의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를 선임한다.

법과 신념을 중시하는 낸시는 슬라히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동료 변호사 테리(쉐일린 우들리)와 함께 재판을 준비한다. 검찰 쪽에는 슬라히의 유죄를 확신하는 냉철하고 완고한 성격의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있다. 그는 '가혹한 정의'를 원하는 정부의 바람대로 슬라히에게 사형을 구형하려 한다. 하지만 국가 기밀로 지정된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 당시의 공식 보고서를 열람하던 그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미 정부의 9·11 테러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는 "오사마 빈 라덴을 필두로 한 알 카에다가 일으킨 테러로 주요 건축물 (정부 관련 시설이나 랜드 마크)을 표적으로 납치된 여객기를 이용한 자살 폭탄 테러"라고 주장한다. 명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분명한 건 테러가 당시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을 올리고, 이라크 전쟁 등을 일으켜 미 군수 산업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젠 국민들의 분노와 공포를 잠재워줄 희생양이 필요하다. 영화 '모리타니안'은 이에 기초해 한순간에 테러리스트로 전락한 슬라히의 지옥같은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공포의 여정을 숨죽이며 따라간다.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증언록 '관타나모 다이어리'(2015)를 모티프로 삼았다. 2015년 출간된 이 책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실존 인물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가 집필했다. 9·11테러의 주동자라는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객관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된 그의 자백이 고문과 협박에 의한 것임을 생생히 고발했다.

'모리타니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진실성이다. 결백을 주장하지만 고발을 망설이는 슬라히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가해졌던 가혹행위와 수감생활을 보여주는 한편으로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명감으로 임한 낸시와 카우치의 인간적인 고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상 깊은 건 슬라히가 공포와 두려움에 맞서는 방식이다. 공포와 두려움에 지배 당하지 않고, 증오하기보다는 사랑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용서하고 이해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슬라히는 더 강해졌고 모두가 인정하는 초인적 인물로 승화됐다. 묵직한 울림이 러닝타임 내내 전해진다.(장르:드라마 등급:15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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