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의 문학 향기] 이번 항해의 끝은 어디일까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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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9 07:59  |  수정 2021-03-19 08:04  |  발행일 2021-03-19 제15면

이정연

이따금 바다에 유유히 떠올랐다 가라앉는 고래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다. 그러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불멍, 물멍이란 말에 '고래멍'이란 말을 추가하고 싶다. 고래가 좋다. 제주 앞바다에 무리지어 사는 남방큰돌고래 영상을 본 후부터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새끼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등에 업거나 주둥이에 올리고 다니는 어미 돌고래였다. 그런 관심이 허먼 멜빌의 '모비딕'으로 이끌었다. 선장 에이햅의 지시 아래 거대하고 하얀 향유고래 모비딕을 쫓는 포경선이 결국 모비딕의 공격에 난파당하는 줄거리다.

"나를 이스마엘로 불러다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서술자 이스마엘은 감성적인 사람으로 삶이 버겁다. 그는 죽음 대신 바다를 선택해 포경선 피쿼드호에 올랐는데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은 에이햅이다. 흔히 그를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고 그 고래를 찾아 죽임으로써 복수하려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로 이야기한다. 에이햅은 그런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모비딕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말리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에게 넋두리처럼 말한다. 열여덟 살에 애송이 작살꾼으로 시작한 이래 결혼식 다음 날부터 아내와 떨어져 고래를 쫓으며 사십 년을 지냈다고. 그중 땅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 긴 세월 동안 신선한 과일이나 빵 대신 바다 위에서 마른 빵만 먹고 지내며 고래를 잡았지만 재산이 는 것도 아니고 한쪽 다리가 없는 늙은 몸뚱이만 남았다고. 스타벅의 눈에는 자신에겐 없는 아내와 자식, 파란 땅, 따뜻한 고향이 보인다고…. 그는 고래가 아니라 삶의 허무를 향해 복수해 버린 것이 아닐까.

세계적 커피체인점 스타벅스도 '모비딕'에서 따온 이름이다. 공동창업자 중 한 사람이 '모비딕'을 좋아해 이 소설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 스타벅을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스타벅스가 흔히 말하듯 '별다방'이 아니라 이렇게나 문학적인 이름이었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로고인 긴 머리 여인은 그리스신화 속 세이렌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을 유혹해 죽게 하는 인어. 왠지 뭔가 속는 기분이 든다. 우리의 나날도 '피쿼드호'다. 이만큼 살고 보니 편한 삶이 없다는 걸 알겠다. 피쿼드호의 선원들처럼 저마다 악착이다. 그 무언가를 쫓아 평생을 살았는데, 그 끝이 난파선이라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달리지 말고 잠시 멈추자. 고래멍의 시간을 갖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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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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