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고(故) 김기홍·변희수·이은용, 그리고 더 많은 퀴어를 위하여…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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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6   |  발행일 2021-03-26 제39면   |  수정 2021-03-26
"性소수자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적 타살' 멈춰야"
지상파 방영한 퀸의 동성간 장면 삭제, 폭력·흡연과 같은 '유해' 취급 논란
세상 잇따라 등진 트랜스 젠더 극작가 이은용·정치인 김기홍·군인 변희수
다양한 차별과 폭력, 생존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차별금지법' 제정 시급
보헤미안.랩소디(브라이언.싱어.연출)_poster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포스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의 록 밴드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생애를 그린 전기 영화로 국내에서만 994만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퀸의 태생지인 영국의 흥행을 넘어설 정도로 이례적인 흥행을 거뒀다. 또한 관객이 조용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연 장면이나 OST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이른바 싱어롱(Sing-a-long)이라는 이전에 보지 못한 관람문화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흥행한 영화들이 극장 개봉 이후 TV로 방영되는 일은 의레 있는 일이라 올해 설 연휴에 특선영화로 방영한다고 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극장 개봉 때 '12세 이용가'를 받아 특별한 삭제 없이 공개가 된 영화가 TV로 넘어가더니 '15세 이상 시청가' 표식을 달고 전파를 탔는데 극 중 프레디가 동성 연인인 짐 허튼과 입을 맞추는 장면을 편집해 버린 것이다. 거기에 게이바에 들어가는 장면 역시 삭제되었고 뮌헨에서 잡히는 파티 참석자들의 동성 간 키스는 모자이크 처리됐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아 처음 보는 관객이 어리둥절하는 일도 생겼다.

김기홍
녹색당 정치인 고(故)김기홍씨.
그러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며칠 후 "SBS가 설 특선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하면서 동성 간 키스 장면을 삭제, 모자이크하는 등 임의로 편집한 것에 대해 전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SBS는 극 중 프레디 머큐리가 동성 애인과 키스를 하는 장면 두 가지를 삭제했고 배경 속에 남성 엑스트라 간의 키스신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며 "이는 SBS가 동성애를 마치 폭력·흡연과 동일하게 유해한 것이라고 보면서 임의로 편집한 행위는 명백하게 성소수자를 차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지개행동은 이어 "특히 동성 간 키스신을 모자이크 처리한 것은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동성애는 부적절하다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는 차별행위"라며 "'보헤미안 랩소디'는 2018년 국내 개봉 당시 12세 관람가로 상영됐고 당시 동성 간 키스 장면에 대해 어떠한 논란이 된 바도 없다"고 전했다. 이들은 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폭력·흡연 장면의 경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서 과도한 묘사를 지양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비해 동성애에 대해서는 다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고 했다.

변희수
성전환 수술로 강제 전역 조치 당한 고(故)변희수씨.
또한 "SBS가 동성애를 폭력·흡연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임의로 편집한 것은 그 자체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의도 하에 이뤄진 행위"라고 주장하는 무지개행동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심의신청을 냈다. SBS의 이번 행위가 방송통신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으므로 심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논란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SBS의 이 같은 행위는 지난달 16일(현지시각) 미국의 영향력 있는 성소수자 매체로 잘 알려진 '아웃'(Out)에도 보도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나 장면 모두를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검열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무지개행동의 논평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아웃'의 이 기사 내용이 SNS에 올라오자 밴드 퀸의 객원 보컬 아담 램버트(Adam Lambert)도 비판을 이어갔다.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이기도 한 그는 세상을 떠난 머큐리를 대신해 수년간 퀸의 월드 투어에 객원 보컬로 참여해왔다. 지난해 초에는 퀸의 원년 멤버들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하기 위해 내한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그들은 퀸의 노래를 주저없이 틀 것이다. 그 키스신에 노골적이거나 외설적인 점은 전혀 없다. 이중잣대는 정말로 존재한다"고 댓글을 달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농담이(아니)야(이은용.희곡)_poster
트랜스젠더 작가 고(故)이은용 희곡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
이 사태에 대한 SBS는 "동성애에 반대할 의도는 아니다"면서도 "지상파로서 심의 규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또 방송 시간대가 가족 동반 시청률이 높아 15세 관람가였고 신체 접촉 시간이 긴 장면은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후반부를 보면 퀸의 'I Want to Break Free' 뮤직비디오가 미국 MTV 검열에 걸려 방송금지 당한 일을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퀸 멤버들이 모두 여장을 하고 나왔기 때문인데, 이를 영국과 유럽에선 유머 코드로 이해했지만 미국에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아무튼 이 일로 퀸의 미국 내 인기가 급락하자 프레디는 다시 음반 판매량이 올라갈 때까지 미국에서 공연하지 않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MTV의 흑역사로 자주 소환되는 일이었는데 SBS가 같은 일을 몇 십 년을 넘어 반복하고 있으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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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검열 논란으로 시끄러울 무렵 "생존하는 트랜스젠더 작가로서 작품을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했던 극작가 이은용씨가, 대한민국에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을 "공식적으로 존재하게 만들고 싶다"며 정치에 시작한 녹색당 정치인 김기홍씨가, 성전환 수술로 강제 전역 조치를 당해 조국을 지키는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싸웠던 군인 변희수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 가운데 김기홍씨는 3년 전에 강연으로 대구에 왔을 때 내가 모더레이터를 맡은 인연이 있어 충격은 더욱 컸다. 강연을 하기 전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동료들에 대해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던 기억이 아프게 떠오른다.

언론에서는 이들의 사인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당연하게 존중받아야 할 이 권리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비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이들에게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속한 학교, 군대, 직장, 가정에서 미묘한 형태에서부터 생존에 대한 위협까지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끊임없이 겪고 있다. 그래도 이 세 사람은 비교적 알려진 성소수자이지만, 그렇지 못해 알려지지 않는 죽음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끔찍하다. 제발이지 차별금지법을 하루라도 빨리 제정하라.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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