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어느 원로 언론인의 자화상… 신문의 날에 생각나는 '내일 아침 영남일보'와 언론의 사명

  •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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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2   |  발행일 2021-04-02 제38면   |  수정 2021-04-02 08:42
지령 2만호 특집  영남일보에 투영된 시대상 3
1948년 한반도 분단이 시작됐다. 남한에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7월부터 임기를 시작했고 8월15일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당시 영남일보는 석간 2면 체제로 신문을 발행했다. (영남일보 1천호(1948년 11월10일)) 〈영남일보 DB〉
윤전기 세우는 딱 하루 '신문의 날'
독자들은 신문없는 답답한 하루 보내
백척간두 선 낙동강전선 전황·승전보
영남일보 호외·속보에 대단한 호응
영남일보 가판 소년으로 활동한 父親
중앙일보 입사, 신문기자의 꿈 이뤄
유신시절 필화사건·언론통폐합 해직
주야장천 취재현장, 가족과는 소외감
아직도 붓 놓지 못하고 16권째 책 집필


4월7일은 제64회 신문의 날이다.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을 기리고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1957년 제정된 기념일이다. 하지만 일간지를 비롯한 시사주간지 등 인쇄매체 종사자들만 감회가 새로울 뿐 밤낮없이 전파매체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날인 것 같다. 게다가 올해 신문의 날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까지 겹쳐 빛바랜 느낌마저 든다.

신문의 날이 제정되던 1950년대 말 전파매체라곤 관영(官營) 중앙방송(KBS 라디오)밖에 없어 신문의 책임이 막중했다. 1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석간(朝夕刊)으로 신문이 발행되었고 신문의 날 딱 하루만 윤전기를 세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신문 없는 날'로 인식하며 답답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신문이 매일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정보 욕구를 충족시켜줬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도 가짜뉴스가 많이 나돌았다고 했다. 이른바 '카더라'방송. 그래서 "그거 신문에 났더라"는 말을 진짜 뉴스로 받아들이는 풍조도 생겨났다고 한다. 진실을 전하고 사실을 말하는 신문이 그만큼 신뢰도가 높았다는 얘기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는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정부보다 높이 평가했다.

우리 언론도 국권을 상실한 일제 강점기 정부 없는 신문으로 언론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해 정간, 폐간, 복간을 거듭하며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다해왔다. 그 당시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창간 100년의 역사를 넘겼다. 우리 고장 대구에서 발행되는 영남일보는 광복 2개월 만인 1945년 10월11일 창간해 올해로 76주년을 맞는다.

영남일보는 창간과 동시에 해방공간의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수난을 겪기도 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6·25전쟁 때는 일취월장(日就月將) 사세를 확장했다. 백척간두에 선 낙동강전선의 전황과 승전보를 호외(號外)와 본지(本紙)로 속보를 전해 독자들의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고 했다. 가판(街販) '내일 아침 영남일보'가 유명해진 이유다.

영남일보의 역사는 필자의 가족사와도 직결된다.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그 당시 10대 초반의 영남일보 가판소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회고담에 따르면 막 쇄출(刷出)된 영남일보를 한아름씩 들고 '내일 아침 영남일보!'를 외치며 대구시가지를 누볐다고 했다. 조간 영남일보는 저녁 무렵 가판이 먼저 쇄출돼 거리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는 것이다. 국운이 풍전등화 같았던 전란 초기 급박하게 돌아가는 낙동강전선의 전황을 신속하게 전해주던 신문이 유일하게 영남일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구에 피란 온 유명 언론인과 문인들이 낙동강전선에 종군하면서 영남일보 지면 제작에 적극 참여한 것도 가판 독자 확보에 큰 힘이 되었다. 일종의 프리랜서였다. 때문에 헤드라인에 빨간 테두리를 친 특종이 영남일보 지면에 가장 많이 반영되었다고 했다. 그 무렵 종군기자단의 간사가 영남일보 주필이던 구상(1919~2004) 시인이었다고 한다.

영남일보에서 시작된 프리랜서 제도는 196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한국 언론사(史)에 길이 빛나는 동아일보 이강현(1925~1977) 기자의 특종 '부정선거와 최루탄 참사사건'은 동아일보 본지보다 부산일보 지면에 먼저 보도되었다. 당시 마산에서 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취재 중이던 이강현 기자는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청년의 시신을 목격했으나 경찰병력에 가로막혀 송고할 방법이 막막했다고 한다. 유일한 통신수단인 우체국의 시외전화와 전보도 두절돼 고민 끝에 부산으로 빠져나와 부산일보 편집국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무조건 부산일보 편집국장에게 지면 할애부터 요청하고 쾌히 승낙을 받은 그의 기사는 1면 톱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게다가 부산일보는 본문 끝줄에 '동아일보 이강현 기자'라는 바이라인까지 배려했다고 한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인 동아일보 특종은 이런 곡절을 거쳐 본지가 아닌 타지(他紙)에서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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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신생 언론사가 속속 생겨나고 그런 낭만적인 프리랜서 시대가 사라지면서 언론계의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었다고 했다. 일선 기자들의 소속감과 취재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6·25 때 영남일보 가판소년이었던 아버지께서도 그 무렵 신문기자의 꿈을 이루었다. 애초 아버지의 꿈은 영남일보 기자였으나 정작 언론계에 투신할 때는 신생 언론사 중앙일보의 사원모집 공고를 보고 공채시험에 응시해 87대 1의 경쟁을 뚫었다고 했다.

올챙이 기자가 된 아버지는 그때 마침 마산 3·15의거 특종으로 4·19혁명의 횃불을 밝힌 동아일보 이강현 기자를 면접시험장에서 처음 만났다. 중앙일보 창간 멤버로 스카우트돼 사회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무렵부터 이강현 부장의 혹독한 수습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처럼 아버지는 우연히 이 부장을 만난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며 멘토로 삼았다. 그래서 아예 가정에 뿌리박지 못하고 밤낮없이 사건·사고 현장을 누볐다고 했다. 가혹한 수련기를 거쳐 입사 10여 년 만에 사회부 차장으로 승진하고 이어 부장·부국장으로 오를 때까지 현장을 지키거나 후배들의 취재를 독려해야 직성이 풀렸다고 했다. 물론 데스크도 지켰지만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기자는 기자일 뿐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신조였다. 그야말로 발로 뛰고 손마디에 신경통이 올 정도로 육필원고를 작성하면서 30 여년간 현장을 지키다 은퇴한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디지털시대. 육필원고는 이미 전설처럼 사라지고 일선 기자들은 저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있어 취재와 기사 작성에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지나간 세월이었지만 그 당시 우리 가족의 소외감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주야장천 집을 비우는 바람에 마치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라는 것과 진배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정년에 이를 때까지 취재현장을 지키는 바람에 오빠 결혼식도 신문이 나오지 않는 신문의 날에 치러야 했다. 586세대인 오빠의 결혼기념일이 4월7일이 된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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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유신 시절에는 아버지가 필화사건에 연루돼 중앙정보부에 불려다니고 프레스카드도 발급받지 못해 변방을 떠돌다가 1980년대 초 언론통폐합 때는 해직까지 당했다. 하지만 그 무렵 철부지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가 집에 머무는 날이 많아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그런 아버지가 해직 10개월 만에 정부 고위층에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서약서까지 제출하고 복직했으나 한동안 출입처에 나가지 못하고 기동취재반을 꾸려 전국을 떠돌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 형제들은 또다시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보고 엄혹한 80년대를 보내며 성장했다. 머리맡에 용돈 봉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집에 다녀간 사실을 확인했을 뿐….

그런 아버지가 아직도 붓을 놓지 않고 2~3년 만에 단행본 한 권씩 낸다. 오늘도 어두운 노안(老眼)에 심지를 돋우며 글을 쓰고 계신다. 생전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집필해온 16권째의 책이다. 그래서 필자는 신문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이미애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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