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모로코 라바트와 카사블랑카

  • 권응상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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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9   |  발행일 2021-04-09 제36면   |  수정 2021-04-09 08:42
유럽풍과 이슬람풍 조화…神이 선물한 초록빛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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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야 카스바에서 본 라바트 시가.

파란색에 흠뻑 물든 채 셰프샤우엔을 빠져 나왔다. 대서양에 접한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로 향하는 길은 풍요로운 들판과 향긋한 오렌지 농장이 즐비한 대평원 가운데로 시원스럽게 뻗어 있었다. 갓길에 오렌지 무더기를 쌓아 놓은 한 농장 앞에 차를 세웠다. 파란 잎 사이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를 수확하는 손길들이 바빴다. 우리 일행을 본 주인이 웃음을 머금고 달려 나왔다. 대뜸 오렌지부터 잘라 불쑥 내민다. 나무에서 갓 이탈한 오렌지의 상큼하고 달콤한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엄지를 치켜세우자 주인은 너털웃음을 짓는다. 우리 돈 5천원 정도를 건네자 양손 가득 무거울 정도로 들려준다. 말 하나 없이 마음을 주고받고 물건을 사고팔았다. 이런 경험은 늘 낯선 여행자를 용감하게 만들고 긴장을 풀어준다.

오늘 숙소도 모로코 전통가옥인 리아드다. 방마다 장식과 분위기, 모양과 크기가 달라 우리 일행은 온 방을 돌며 구경하기 바빴다. 한동안 높은 천장에 이국적인 이슬람 문양이 만들어내는 묘한 기운에 휩싸여 있었다. 민트차를 한 입 머금자 비로소 새로운 도시를 맞는 긴장과 호기심이 달콤하게 녹아들었다.

모로코 왕국의 수도 라바트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카사블랑카 다음으로 큰 도시다. 고대 로마의 식민도시로 처음 건설되었으며 10∼11세기에 이슬람교도인 베르베르인이 이단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금의 시가지로 확장했다고 한다. 성벽을 기점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눠진다. 성내의 구시가에는 메디나와 유대인 거리가 자리하고 있고, 성외의 신시가에는 왕궁·정부청사·외국공관·유럽인 거리·라바트대학 등 유럽풍과 아랍풍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행정수도 '라바트'
성벽내 구시가, 메디나·유대인 거리
성벽밖 신시가, 왕궁·유럽인 거리
붉은벽돌 웅장한 위용의 '하산 탑'
독립영웅 잠든 무하마드 5세 능묘
요새에서 곡물창고 변한 '카스바'


리아드 숙소가 늘 그렇듯 환청 같은 기도 소리에 잠을 깼다. 메카까지 들리라는 듯 확성기까지 동원했다. 창 틈으로 스며든 햇살이 벽에 두른 기하학적 문양 사이에 내려앉아 있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먼저 라바트의 랜드마크 하산(Hassan) 탑을 찾았다. 이 탑은 기둥만 남아 있는 하산 모스크의 미나레트다. 모로코 최초의 알모아데 왕조 술탄인 압드 알 무민은 12세기 이곳을 스페인 출정의 기지로 삼았다. 그의 손자이며 흑인 노예의 아들인 야쿠브 알 만수르(정복자)는 1184년 권력을 잡았다. 그는 스페인의 기독교 포로들을 데려와 라바트 시가지를 조성하는 건설 노예로 부렸다. 당시 만들었던 도시 성벽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도시의 중앙 관문인 우다야(Oudayas) 문 역시 그 당시의 흔적이다. 그는 또 스페인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하산 모스크를 짓기 시작했다. 이 모스크는 그의 군대 전체가 들어갈 정도로 크게 지을 예정이었으나 야쿠브는 모스크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199년에 사망했다.

입구에는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입구 옆의 붉은 성벽은 한쪽 귀퉁이가 허물어진 채 두꺼운 세월을 받치고 있었다. 거대한 탑을 배경으로 크기도 모양도 다른 200여 개의 기둥만이 덩그러니 남아 미완성 모스크의 웅장함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었다. 이 돌기둥은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듯이 돌기둥 역시 모양이나 크기가 모두 다르단다.

'아름다운 탑'이라는 뜻의 하산 탑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44m 높이에 한 변의 너비가 16m나 되는 정사각형의 웅장한 탑이다. 당초 계획의 반밖에 올리지 못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라바트의 상징으로 충분할 만큼 웅장하고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6층으로 이루어진 이 탑은 층마다 하나의 방이 있으며, 술탄이 말을 탄 채 꼭대기에 오를 수 있도록 넓은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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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5세 능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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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5세 능묘 내부의 화려한 모습.

모스크 한쪽에는 1960년대에 지어진 무하마드 5세(Muhammad V)의 능묘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일부다처제를 포기해 세계적 화제가 되었던 현 국왕 무하마드 6세의 할아버지다. 무하마드 5세는 특히 모로코를 독립시킨 영웅으로 전 국민의 추앙을 받는다. 이 능묘는 그의 아들 하산 2세가 10년간 400여 명의 장인을 동원해 완공했다고 한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이 능묘는 화려한 모로코 건축양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파란색 지붕은 곡식을 상징하고 꼭대기에 있는 3개의 원형 봉은 이슬람, 알라, 코란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부는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계단을 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에 있는 관을 1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중앙이 뚫려 있는데 이것은 전통가옥 리아드의 중앙 거실과 같은 배치로 보였다. 석관은 모두 3개인데 중앙이 무하마드 5세이고 양쪽에는 두 아들의 관이다. 모로코에선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한 대를 건너뛰어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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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여행한 김정희 작가의 유화 '안달루시안 가든스'

다음 목적지 우다야 카스바로 가기 위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부레그레그 강을 따라가니 먼저 우다야 정원이 나타났다. '안달루시안 가든스'라 불리는 이곳은 라바트가 '정원 도시'라는 명성을 갖게 만든 대표적 정원이다. 유럽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 안달루시아풍의 정원에는 온갖 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우리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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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트 하산 모스크 입구.

정원을 나와 대서양에 접한 카스바로 향하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곳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라바트의 셰프샤우엔'이라 불리는 파란 마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은 공방과 기념품 가게 사이로 벽화가 어우러진 것이 영락없는 '작은 셰프샤우엔'이었다. 파란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만난 넓은 광장이 바로 카스바였다. 부레그레그강 어귀와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12세기 말에 지어진 이 카스바는 요새로 축조돼 곡물창고로 쓰였던 곳이었다. 지금은 라바트의 역사를 안은 채 라바트 시민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막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는 이중적 속성의 저 바다 위에 자리한 이곳이 요새였다가 창고로 쓰인 것은 이 카스바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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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하산 2세 모스크.

다음 날 모로코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대서양 연안 풍광에 눈길을 빼앗기며 느릿느릿 카사블랑카로 들어갔다. 라바트가 행정수도라면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경제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다. 아프리카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모하메드 5세 국제공항을 모로코의 관문이기도 하다. 해변도로를 따라 커피숍, 바, 호텔, 그리고 모로코에서 제일 큰 '모로코 몰'까지 대도시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 다음 날 출국이어서 이곳에서의 여행은 하산 2세 모스크 한 군데만 계획했다. 이 모스크는 세계에서 세 번째 크기이고, 모로코에서는 가장 큰 모스크다. 현 국왕인 모하메드 6세의 아버지 하산 2세가 국민 성금을 모아 7년에 걸쳐 만든 모스크로 미나레트의 높이가 200m나 된다. 하산 2세는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코란의 구절을 따라 바다 위에 모스크를 짓도록 했다. 프랑스 건축가 미셀 펭소는 왕의 요구에 따라 건물 일부분을 절벽에 붙이고 나머지 대부분을 대서양 바다로 확장해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원을 만들어냈다. 9헥타르의 면적에 이슬람 학교, 여러 개의 공중목욕탕, 모로코 역사박물관, 도서관, 그리고 주차장이 들어섰다. 이 모스크는 실내 2만명, 실외 8만명 등 동시에 10만명이 한꺼번에 예배볼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사원 바닥의 일부를 유리로 만들어 신도들이 바다 위에 무릎을 꿇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경제수도 '카사블랑카'
아프리카 최대 항구도시이자 관문
대서양 위 지은 '神의 옥좌' 모스크
우뚝한 '미나레트'에 절로 경외심


해변도로에서 모스크로 방향을 잡으니 금방 거대한 미나레트가 눈에 들어왔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한참을 걸어도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카사블랑카 어디에서나 보인다는 말이 실감 났다. 광장 끝 바다에 걸쳐 있는 모스크와 우뚝한 미나레트는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궁전 같아 보였다. 신앙이 없는 사람도 절로 경외심을 갖게 하는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모로코 아이의 눈동자를 보면서 왜 느닷없이 영화 '카사블랑카'의 'Here's looking at you, kid(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라는 대사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도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이 제목만 '카사블랑카'이지 모두 할리우드의 세트장에서 찍었다는 이 자본주의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서홍관 시인이 탄식한 것처럼 "아카시아 향기를 맡으며 아카시아 껌 냄새가 난다고 하는"('민들레와 개나리') 꼴이 아닌가. 이 엄청난 본말전도의 연상작용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영화 속의 '릭스 카페'가 실제 이 도시에서 버젓이 성업 중이라니, 나의 터무니 없는 연상도 탓할 게 못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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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 교수)

나의 모로코 여행은 이렇게 카사블랑카에서 시작해서 카사블랑카에서 끝이 났다. 이제 이 나라 이 도시는 어느 곳 어느 순간에 불쑥불쑥 내 삶에 끼어들 것임을 안다. '카사블랑카'의 'As Time Goes By'의 가사처럼 시간이 흘러도.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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