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만수<대구시 대학협력관>…'때와 땅'을 보고

  • 한만수 대구시 대학협력관
  • |
  • 입력 2021-04-01   |  발행일 2021-04-02 제20면   |  수정 2021-04-02 08:05
2021040201010000628.jpg
한만수대구시 대학협력관

연록의 향연이 시작됐다. 대구미술관에도 봄이 한창이다. 울긋불긋한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벚꽃 등이 기다리기라도 한 듯 예쁜 모습으로 반겨준다.


대구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때와 땅'이란 대구 근대미술전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서양화구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미술이 시작된 1920년대부터 전쟁의 상흔을 극복해 가는 1950년대까지를 '예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 '이인성과 이쾌대', '피난지 대구의 예술' 등 다섯 부문으로 나눠 담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기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작가 64인의 140여 작품이 전시돼 있다.


우선 3·1운동의 여운이 남아있던 1920년대의 전통서화가 미술로 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한국화단의 대표작가인 이인성과 이쾌대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 뭉클한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굴절된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불의와 고난을 떨치고 극복하려는 시대정신을 담은 두 분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이었다.


먼저, 이인성의 '경주 산곡에서'(1935), '사과나무'(1942) 등 이름난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작품에서 민족의 혼을 상징하는 붉은 흙으로 민족이 겪는 비애의 정서와 같은 민족적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미술사가들 마저 깊은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다는 '어느 가을 날'(1934)은 필자의 발걸음을 한동안 옮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독일 한 미술관의 인상주의 전시에서 '한국의 고갱, 이인성'이라며 설명하던 어느 큐레이터의 설명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어, 이쾌대의 전설과 같은 그림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 말)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림 속에는 멀리 구불구불 이어지는 논길 위로 여인들이 새참을 나르고 있었다. 주인공 이쾌대의 사실주의적 자화상은 붓과 팔레트를 들고 전면을 응시하고 있다. 또한 밝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군상Ⅰ·Ⅱ'(1948~1949)에서는 조국과 민중의 저력을 믿고 미래를 낙관하는 희망을 느낀다.


황홀함은 계속 됐다. 태소 주경이 그린, '경음악'이라는 추상회화의 발견은 놀라움이었다. 음악의 운율은 파장으로 이루어져있다. 파장은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파장이 입자를 갖는다는 상상 아래 유려한 음률과 비트, 음색을 구체와 큐브, 반달과 직선, 나선으로 구성해냈다. 그는 작품에서 피카소의 큐비즘(cubism)과 구성주의 회화를 적절하게 차용하는, 놀라운 근대성을 1959년에 구축해냈던 것이다.


이른 시기에 고도로 정제된 추상회화의 세계를 완성했다는 장석수. 그의 <광녀>라는 작품은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도 않은 1955년 남편과 자식, 그리고 터전을 잃은 여인들의 모습이다. 뺨은 말라있고 초점 잃은 눈빛과 머리에 꽂은 이름 모를 하얀 꽃의 대조는 처참한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전쟁 때 피란 예술가와 대구 작가들이 서로 다른 장르의 교류를 보여주는 아카이브도 볼 수 있다. 대구작가들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융합의 멋을 추구하면서 예술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관람 후, 생각이 깊어졌다. '때(時)와 땅(空)'. 마치 '근대의 시간 속에서 대구라는 땅이 얼마나 풍성했는지 아시나요?'라고 묻는 것 같다. 이번 전시가 한국근대미술의 중심지였던 대구의 명성에 걸맞게 '국립 근대미술관'을 건립하는 일과 더불어, 우리지역 젊은 작가들을 프로모션하고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기획공간들에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에 대한 담론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한만수<대구시 대학협력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