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교수의 '톡! 톡! 유럽'] 버터 대신 총 선택한 '글로벌영국' 핵무기 증강 옳은 선택일까

  •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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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2   |  발행일 2021-04-02 제21면   |  수정 2021-04-02 11:05
대규모 국방비 증액 선언…냉전 붕괴 후 처음으로 핵무기 증강
러·북·이란 등 나라 위협하는 국가 늘어났기 때문이라 분석
영국이 비준한 핵확산금지조약 버젓이 위반해도 언론선 잠잠
4년간 국방예산 165억 파운드 추가…사회복지 등 축소 불가피
글로벌영국 청사진 실현하기엔 예산·정책수단 부족하단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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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유럽연합(EU)에서 탈퇴, 브렉시트를 완수해 지난 1월1일부터 '독립' 국가가 된 영국이 세계로 뻗어 나간다는 '글로벌 영국(Global Britain)'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지난달 16일 발표된 국방 및 외교·안보·원조 통합 정책 검토 보고서에서 영국은 대규모 국방비 증액을 선언했다. 상호 긴밀하게 연계된 위 네 가지 정책에서 시너지를 내고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게 영국의 정책이다. 정부 재정은 한정돼 있기에 국방비(총)를 더 많이 사면 복지(버터)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핵탄두 증강과 해외 원조의 삭감, 인도태평양 지역에 국방과 외교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과연 영국이 이런 거대한 정책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핵확산금지조약을 어기고 핵탄두 증강을 발표한 영국

영국은 '유럽'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벗어나 세계로 나아가겠다며 브렉시트 후의 자국 정책을 글로벌 영국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정책 검토는 계획보다 1년이나 늦게 나왔지만 그래도 선언에 머물렀던 글로벌 영국의 청사진을 일부나마 나름대로 제시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트라이던트 핵탄두를 40% 더 늘리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현재 180기에서 260기로 핵탄두 비축량이 급증한다. 영국은 냉전 붕괴 후 처음으로 핵무기 증강에 나섰다. 핵무기 감축이라는 시대의 조류에 역행한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타격이라고 간략하게 언급했다. 핵확산방지조약은 핵보유국에게 핵무기 감축을, 비보유국에게는 핵무기 개발을 금지했다. 영국은 핵보유국으로 핵무기를 감축할 의무를 국제법적으로 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계획은 영국이 비준한 국제조약을 버젓이 대놓고 위반한다. 영국 언론 중에서 트라이던트 핵탄두 증강이 NPT 위반이라고 간략하게나마 지적한 것은 이코노미스트 이외에 극소수의 언론에 불과하다. 국제정치는 보통 무정부 상태라고 불린다. 주권 국가의 국제법 위반을 지적하고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매우 미약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핵탄두 증강 역시 이런 국제정치의 허점을 노렸다. 정책 검토 보고서는 핵무기 증강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 영국에 핵위협을 가할 수 있는 국가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영국은 또 인도태평양 지역에 국방 및 외교정책의 역량을 좀 더 집중한다. 올 해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을 이 지역에 파견해 일본과 합동 군사훈련을 개최한다. 20세기 초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당시 급부상한 일본과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영국은 중국의 홍콩 민주주의 탄압 등을 규탄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정책에 적극 동참해 왔다. 지난 2월 초 영국의 국방 및 외무장관은 일본과 '2+2' 회의를 개최해 긴밀한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백년이 훨씬 지난 현재 제2의 영일동맹과 유사한 정도의 양국 협력이 진행 중이다.

이런 정책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환영이지만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의 안보위협이 아프리카와 지중해, 러시아인데 인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과도하게 집중하면 안보 역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국방비 대폭 증강에 따라 해외 원조는 그만큼 줄어

정부 재정에서 국방비와 복지가 상충관계에 있듯이 국방비 증액은 곧 해외 원조액의 감소로도 이어졌다. 영국의 국방예산은 앞으로 4년간 추가로 165억파운드 늘어난다. 핵탄두 증강과 사이버 안보 강화 등 여러 조치가 포함됐다. 문제는 한정된 정부재원이기에 국방비 증액은 해외 원조의 삭감으로 대부분 충당됐다.

유엔은 선진국에 국내총소득(GNI)의 0.7%를 해외 원조액으로 권고한다. 영국은 2014년부터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 함께 이를 준수한 몇 개 안되는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방비 증액으로 영국의 해외 원조액은 0.5%로 떨어졌다. 당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아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 해외 원조액 0.7%를 준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 특별법은 개정됐다.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전 총리와 고든 브라운 노동당 총리 등 생존해 있는 5명의 총리 모두가 해외 원조액 삭감을 비판했다.

해외 원조는 선진국이 개도국과 저개발국에 지니는 하나의 의무다. 선진국의 세계에 대한 책임이다. 영국의 비틀스나 BBC 드라마처럼 영국의 문화는 각국의 시민들을 끌어 들인다. 해외 원조도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영국의 이미지를 제고해 왔다. 그런데 국방비를 늘린다고 그동안 쌓아 올린 국가 브랜드 호감도를 단칼에 없애 버렸다.

◆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으로 복지 축소 불가피할 듯

영국은 지난해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유럽 국가 중의 하나였다. 뒤늦게 봉쇄조치를 단행하고 코로나 검사와 치료에서 크게 뒤처졌다. 올해 들어 백신 접종에서는 선방 중이나 세 차례가 넘는 강력한 봉쇄로 경제적 타격은 그만큼 컸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9.9%를 기록했다. 300년 만의 최악의 성적표다. 내년은 저점 효과로 5% 정도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영국 정부는 돈 주머니를 과감하게 풀었다. 고용 유지 지원금과 중소기업 지원 등으로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2.9%로 급증했다. 액수와 급증세가 30년 만의 최대를 기록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중순 예산 운용 계획에서 2023년부터 법인세를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부터 법인세는 계속 인하돼 19% 선이었으나 이게 크게 오른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내는 소득세로 인상될 듯하다.

코로나19에서 경기가 회복되면 그동안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줄어든다. 과도한 국방비 증액과 세금 인상으로 복지 축소는 불가피하다. 세금 인상분이 그간의 정부 재정적자를 메우는데 상당 부분 지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책 검토 보고서에서 제시된 정책을 일부 전문가들은 '과도한 수사, 낮은 실현 가능성'으로 평가했다. 포부는 원대하지만 이를 실현할 돈이나 정책적 수단이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글로벌 영국의 청사진이 구체적으로 제시됐지만 이를 실현하기에는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 아무튼 세계로 뻗어나가는 영국의 모습을 한 번 지켜보자.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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