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더 파더…기억 잃어가는 아버지와 유일한 가족 딸의 이야기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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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9   |  발행일 2021-04-09 제39면   |  수정 2021-04-09 08:36
견고했던 자신의 세계가 전복되는 상황과 마주
강렬한 연기 앤서니 홉킨스 오스카 후보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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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이 집을 탐내는 것 같다. 내가 혼자서 못 지낸다고 우겨대면서 나를 어딘가로 보내려 한다." 은퇴 후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80대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는 새로운 간병인 로라(이모겐 푸츠)에게 딸 앤(올리비아 콜맨)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내비친다. 성심껏 아버지를 돌봐주는 다정한 딸이지만 앤서니는 그녀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사실 앤서니는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 노쇠한 그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기억력도 점점 쇠퇴하는 중인데, 늘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의 행방은 물론이고 딸과 아끼던 집마저 점점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더 파더'는 천천히 망각 속으로 침잠해가고 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그의 유일한 가족인 딸의 이야기다.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기억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급기야 자기 자신까지 의심하게 된 앤서니의 복합적인 심리를 따라간다. 현재의 기억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앤서니는 집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30년 넘게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직접 가꿔온 이곳이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할 유일한 보루라고 생각해서다. 결국엔 그 세계마저 흔들리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그의 혼란과 고통은 더욱 커져간다.

프랑스에서 호평받은 동명 연극이 원작이다. 연극의 원작자인 플로리안 젤러가 앤서니 홉킨스를 염두에 두고 각색해 직접 연출했다. 치매에 걸린 가족과의 관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다지 새로울 건 없지만 스릴러를 보듯 예측불가한 내러티브와 흡인력으로 마음을 끌어당긴 영화는, 연극이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해 주인공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밀도 높은 심리극으로 완성했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이에 대해 "관객이 미로 속에서 손으로 벽을 더듬어 길을 찾는 기분을 느꼈으면 했다"고 밝혔다.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자신의 이름을 딴 주인공 앤서니로 분했다. 그는 느릿하게 소멸해가는 육체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기억의 소멸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 타인에 대한 강박과 집착 그리고 결국엔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정신으로, 견고했던 자신의 세계가 전복된 상황을 마주한 극 중 앤서니의 심리와 내면을 강렬하면서도 압도적인 연기로 표현했다. "삶은 여전히 한 점의 가구에 닿아 있는 햇살처럼 풍요롭지만 그 반대의 면도 존재한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고 미스터리 한 일"이라고 감회를 밝힌 앤서니 홉킨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92년 '양들의 침묵'으로 수상한 이후 29년 만의 재도전이다.(장르:드라마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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