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순 불교미술 작가 "돌부터 금가루까지 켜켜이 쌓고 쌓는 작업…나를 돌아보게 되죠"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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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35면   |  수정 2021-05-0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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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 작가가 지난달 27일 자신의 9번째 개인전이 열린 대구시 남구 이천동 이상숙 갤러리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동욱 기자 dingdong@yeongnam.com

박명순 작가(50)는 불교미술을 업으로 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불교미술은 생소하다. 기자 역시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지난달 28일 박 작가의 9번째 개인전시회 '아마타 후불전'이 열리고 있던 대구시 남구 이천동 이상숙 갤러리를 찾은 기자는 박 작가의 작품을 보고 (박 작가로부터) 설명을 들었지만 솔직히 어렵다. 미술을 처음 접할 때부터 불교미술과 함께한 박 작가는 벌써 30년 넘게 외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시민들과의 소통은 답보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9번의 개인전과 수십 번의 단체전을 경험한 중견 작가지만 아직도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묵묵히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생각이다. 부처님 오신날(19일)을 앞두고 박 작가를 통해 불교미술을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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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 작가의 작품.

▶코로나19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전시, 공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9번째 개인전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있는지.

이번 전시는 초안부터 마무리까지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 학생들의 학습 자료로 남기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 더불어 불교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불화가 제작되는 과정을 체험·학습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완성된 불화는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후학을 양성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전통의 방식으로 아미타부처님과 협시보살, 10대 제자까지 전 과정을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전시는 그 과정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본존불이신 아미타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정토에 가게 하는 부처다. 또 협시보살 중 관세음보살은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도 하는데,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며 중생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자비의 상징이다. 그리고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주는 힘을 지닌 보살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많은 이들이 큰 아픔을 겪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아미타 부처님과 보살님께 팬데믹의 상황을 잘 극복하고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자비를 청했다. 또 이번 전시 작품 중에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에 나오는 관음보살 정병이 있다. 정병에 든 감로수를 버드나무 가지에 찍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는 관음보살님께 코로나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에게 자비를 청하는 마음을 담았다.

▶불교미술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불교미술을)하게 된 배경이 있나.

저에게도 불교미술은 생소한 분야였다. 무교인 집안에서 태어나 미술을 하게 되리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진로를 선택할 즈음, 저는 고등학교 은사님이 불교미술을 전공하고 관련 활동을 하던 분이었다. 저의 재능을 알아보고 소개해 주셔서 이른 나이에 불교미술을 접하게 됐다. 당시에는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였지만 전통적인 재료들과 비단·금분 같은 재료들을 사용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니 미래가 불확실한 회화 전공은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은사님을 만나 불교미술의 길을 알게 됐고 당시는 IMF 외환위기 이전이라 우리나라 경제가 굉장히 호황기였기 때문에 사찰 건립과 증축이 많던 시기였다. 더불어 불교미술의 수요도 많았다. 좋아하는 미술작업도 하면서 직업적인 안정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면이 저의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불교미술의 매력
흔한것과 귀한것…다채로운 재료
쌓고 입히는 과정 삶과 닮아있어
신앙적 교리 담겨진 '목적미술'
시간과 결과물 비례하는것 아냐
작업순간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

9번째 개인전 배경
중생 구제·치유하는 '자비의 상징'
코로나로 힘든 이들에게 전해지길…
전통 불화 제작과정 학생들과 공유
30년 외길…대중과 소통하는게 꿈



▶불교미술에 대해 설명해 달라. 또 불교미술의 매력이라고 하면.

불교미술은 일종의 목적미술이라 할 수 있다. 신앙적 교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불교미술은 글을 모르는 중생들에게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불교미술이 단순히 조형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교적 이념이 전제된 불교미술은 표현의 행위를 뛰어넘어 신앙적 교리를 쉽게 이해하고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불교미술은 대략 건축, 조각, 회화, 공예로 나눌 수 있는데 기원전 2세기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생성돼 인도뿐만 아니라 불교가 전파된 여러 나라에 불교를 바탕으로 각 민족 고유의 역사와 사상에 맞는 독특한 믿음과 문화를 시각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가 처음으로 불교를 수용한 이후 백제·신라에도 잇따라 전해지면서 한반도의 사상체계와 신앙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불교미술은 이 땅에서 이룩한 최초의 시각혁명으로서 한국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불교미술은 화려하고 장엄하다. 재료도 다채롭다. 돌·금가루·나무·비단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과 가공 된 재료들, 그리고 흔한 것, 귀한 것. 우리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작업을 하다보면 저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종이 한 장 한 장을 켜켜이 쌓고 아교를 칠하는 밑작업, 절제와 정도의 선 긋기 과정과 쌓고 쌓는 채색과정, 마무리의 찬란한 금문양까지 과정마다 억만겁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수천 년 이어져 온 부처님의 말씀과 삶의 묵직함이 제 손을 통해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보람된 과정이 저에게 있어 불교미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처님의 삶과 말씀을 옮길수록 세상 안에서의 제 삶과 인간 본연의 자세를 성찰하는 과정이 켜켜이 쌓인다.

▶박 작가에게 불교미술이란 무엇인가.

처음부터 불교미술 전공으로 시작했다. 올해로 30년이 됐다. 최근 10년간 현대미술 전시에도 많이 참여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다 보니 제 전공을 서양화로 오해하는 분도 계신데 저의 근본은 불교미술이다. 전통기법, 전통미술을 제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단순히 저만의 작업이 아니라 수천 년의 과거와 제 이후의 수천 년 이어질 미래를 생각하면 저의 행보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진중해진다. 불교미술은 제 삶과 작업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제 작업에서 부처님이 형상화되지 않는다고 해도 불교미술은 항상 그 바탕에 있다. 2018년작 '버리고 비우니 환희 들여 비추다'는 그 시작이 연꽃의 씨가 물위에 떨어지는 순간의 모습이었다. 불교에서 연꽃은 매우 신성한 존재다. 싯다르타 태자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씩을 걸을 때마다 땅속에서 연꽃이 솟아올랐다고 전해져 '부처의 꽃'이라고도 한다. 연꽃은 사바사계에 뿌리는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깨달음을 향해 피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씨앗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않고 보존되다가 적당한 조건이 주어지면 다시 싹이 트기도 해 '불생불멸'의 상징이다. 연꽃이 지면 그 꽃은 죽지만 씨앗은 남는다.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을 가지고 온다. 이는 불교에서의 윤회사상과 맥을 함께한다. 저는 작품을 통해 연꽃씨에서 시작돼 반복되는 점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삶,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꽃이 지기 전에', '戀- 피고지다'연작, '지금, 여기에 머물다'는 연을 통해 찰나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찰나는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 삶도 우주의 긴 시간에서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무수한 찰나의 삶들이 모여 모든 순간을 이어간다.

▶언제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나.

불교미술을 업으로 한 지 15년쯤 되었을 때 정체기 혹은 소통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 생겼다. 이른 나이에 진로를 정해 한 길만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내가 달려 온 길 위에서 주변을 바라보게 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불교미술에서 오는 기능적인 숙련과 숙달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주제와 대중적인 소통을 원하게 됐다. 그래서 미술학과 서양화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미술의 다양한 장르와 현대미술의 가변성까지 고려하게 된 것 같다. 대학원에서 저의 작업 근간이 되는 불교미술을 바탕으로 서양화의 여러 장르와 재료를 결합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현대미술에서 저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로 확립되고 확장되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러한 과정과 작품들이 점점 호응을 얻으며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들과 많은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더 이상 불교미술가가 아닌 '작가'로 불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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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 작가가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종이를 켜켜이 쌓고 아교를 먹이고 선을 긋고 채색을 한 후 찬란한 금문양을 새기기까지 무수한 작업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주로 언제 어디서 작업을 하나.

집에서 작업을 한다. 과거에는 집밖에 작업실이 있었지만 두 아들의 엄마다 보니 때마다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작업실을 따로 두고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그리고 충분한 작업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이동시간이라던가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것이 필요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하루 20시간 이상 작업을 한다. 우리 전통회화 방식이 백지의 얇은 종이 한 장에서 시작해 종이를 여러 겹 붙이고 아교를 먹이는 등의 무수한 밑 작업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 제 성격상 부처님, 사천왕 제자상 등 한 분 한 분을 그려낼 때 바른 선 작업을 위해 여러 번 연습과정을 거치는 스타일이라 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어떤 날은 연습에 하루를 꼬박 보내기도 한다. 작업기간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늘 마음에 드는 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종교미술이다 보니 아무래도 마음가짐, 순간의 기운 같은 것들의 영향을 더 받는 것 같다.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전통을 이어가는 작가다. 전통을 이어간다는 사명으로 작업을 하지만 대중에게는 생소하다보니 특정종교의 미술로 치부되거나 기능적인 측면만 부각되는 것이 늘 아쉽고 안타까웠다. 우리나라 불교미술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로 1천500여 년간 이어져 온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다. 시대마다 시대의 정서와 기술들이 반영되면서 불교미술은 우리 민족의 얼과 희로애락을 끊임없이 담아왔다. 현대인에게는 종교라는 것이 과거에 비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긴 했지만 불교미술은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우리민족의 삶에서 그들의 바람과 고통과 기억들을 아우르며 이어질 것이다. 종교적인 의미뿐만이 아닌 우리민족의 전통과 얼을 이어가는 장르로 불교미술이 이해되길 바라며 종교의 비중이 적어진 현대인의 삶에서 접근성이 더 높아지도록 더 많은 전시의 기회와 작가에 대한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여성 전업 작가로서 작업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웠다. 지난 20여년 학업과 작업을 이어가면서 자녀들과 남편의 배려와 희생이 늘 뒤따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 갈 무렵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심지어 이전의 일과 전혀 결이 다른 서양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기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오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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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우리의 전통유산인 불교미술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려 한다. 사찰이 아니더라도 갤러리·미술관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화를 접할 수 있도록 작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할 것이다. 또 제가 몸담고 있는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서 학생들을 교육해 양성하는 동시에 문화적 저변을 넓히도록 다양한 시대적 변화의 요구를 반영한 불교미술의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세계를 시도할 생각이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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