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존재 이유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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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3   |  발행일 2021-05-03 제27면   |  수정 2021-05-05 07:45

이 세상 천지만물은 나름 존재 이유가 있다. 그 만물은 존재가치와 쓰임새에 따라 품격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물을 다루려면 그 사물의 격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게 진리다. 이런 논리를 우선 낚시에 적용해보자. 민물낚시에서 고기 중 황제급은 단연 잉어다. 그 잉어를 낚으려면 황제고기의 격에 맞게 고급 미끼를 사용해야 한다. 피라미나 붕어 낚을 때 쓰는 루어나 지렁이 따위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낚시 고수들은 잉어를 낚을 때 온갖 고급 성분이 다 들어간 떡밥을 만들어 쓴다. 옥수수 가루, 고구마, 된장은 기본이고 가루우유도 넣는다.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의 고품격 미끼를 써야 잉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접이라고 주장하는 낚시 고수도 있다.

천지 만물 중에서 인간은 존재 이유에 관한 한 엄격해야 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므로 그 어떤 물상(物象)보다 존재하는 가치와 존재하는 이유가 선명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갖춰야 할 덕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강조돼왔다. 공자는 학문(文)·덕행(行)·충성(忠)·신의(信)의 네 가지 가르침을 강조했다. 서양에서 기사도의 기본 덕목도 용기·관용·신의였다. 이 중에서 신의가 가장 중요하다. 흔히 현대를 '불신의 시대(不信 時代)', 기만의 시대, 배신의 시대라고 한탄한다. 하지만 신의가 없으면 곤란하다. 로마시인 리비우스는 '신뢰를 없애 버리면 모든 인간 사회는 없어진다'고 말했다. 공자는 '사람이면서 신의가 없으면 어떻게 사람 행세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논어 위정편에 썼다. 이처럼 신뢰는 모든 능력에 우선하는 자질이다. 그러나 사람을 믿을지, 얼마나 믿어야 할지에 대한 논란은 적지 않다. 철학자 세네카는 '모든 사람을 믿는 것도 잘못이고, 아무도 안 믿는 것도 잘못이다'고 했다. 지나치게 믿지도 지나치게 불신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 때의 재상 마자랭의 지혜가 정답일까? 그는 '모든 사람이 정직하다고 믿어라. 그리고 사기꾼과 함께 살듯이 모든 사람과 함께 살아라'라고 했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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