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하녀'~'육식동물' 김기영 감독을 만나다

  • 장우석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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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39면   |  수정 2021-05-07 09:59
한국이 낳은 아카데미 주역 윤여정·봉준호의 스승 '故 김기영 감독'
화녀.재개봉판(김기영.연출)_poster
김기영 연출 '화녀'
김기영.감독
故 김기영 감독
윤여정.아카데미.여우조연상.수상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윤여정
기생충(봉준호.연출)_poster
아카데미 감독상·작품상 등 수상한 '기생충' (봉준호 연출)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정이삭 연출)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받은 것이고, 아시아 배우로는 두 번째 수상이라고는 하나, 1958년 제30회 시상식에서 '사요나라'(조슈아 로건 연출)로 수상했던 배우 미요시 우메키가 일본계 미국인이었으니 아시아 최초 수상이라 여겨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이는 직전에 미국배우조합상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이미 37개의 트로피를 받은 바 있어 수상이 유력했다. 그래도 실시간으로 호명되는 이름 석 자와 수상 소감까지 듣는 기쁨은 당사자만큼 벅찼다. 배우 브래드 피트에게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냐는 가벼운 타박(그는 '미나리'의 제작사인 플랜B를 설립한 이로, 이날 여우조연상 시상을 맡았다)과 함께 예의 시상식에서 들을 수 있었던 특유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화법을 곁들인 소감을 그이는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 그리고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제 첫 영화는 김기영 감독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그와 4편을 함께 작업했습니다. 그는 천재적인 감독입니다. 아마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이 순간을 정말 축하해줄 것 같습니다." 한국영화사에 아로새겨질 이 역사적인 순간에 윤여정이 기어코 언급한 그는 누구인가.

윤여정 데뷔 작품 등 4편 함께 작업
오스카 시상식서 감독에 감사 전해

관객 22만명 동원 최고 흥행작 '하녀'
근대화 과정 계급적 통찰, 파격 연출
'기생충' 주요배경 '하녀' 2층집 연상
봉준호 감독도 김기영 열렬한 신봉자

71년 '화녀' 84년 '육식동물' 등 5편
같은 스토리를 시대 상황 맞춰 변주

김기영 감독은 일제 강점기였던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자라다 광복 직후 서울대 의과대학에 들어가 연극반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그는 6·25전쟁 직후 미군 공보원에서 제작하는 홍보영화 연출을 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죽엄의 상자'(1955)라는 영화로 데뷔를 한다. 김기영의 초기작인 '초설'(1958)이라던가 '10대의 반항'(1959)을 보면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표작이랄 수 있는 '하녀'(1960)를 연출하고 나서부터 그는 변하기 시작했다. 개봉 당시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그해에만 2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흥행작이 된 '하녀'는 한 가정부가 중산층 가정으로 들어와 그 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이야기로 성적 억압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심리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김기영의 연출도 놀랍지만 농촌 출신 여자가 도시 가정을 무너뜨리는 서사 구조에 근대화 과정에 있었던 한국사회에 대한 계급적인 통찰까지 이루어낸다.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과감한 캐릭터, 대범하고 파격적인 이미지는 또 어떤가. 고급스러운 피아노와 쥐약이 공존하는 2층집 계단을 부단히 오르내리는 캐릭터들을 통해 상반되고 상충되는 것들을 수직과 수평으로 표현해내는 방식은 요즘 관객들까지 충분히 충격할 만하다.

김기영은 '하녀' 이후 '화녀'(1971), '충녀'(1972), '화녀 82'(1982), '육식동물'(1984)에서 같은 이야기를 시대 상황에 맞춰 무려 다섯 차례나 변주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다져가지만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유신시대를 맞닥뜨리게 된다. 1972년 이후로 영화법이 바뀌고 영화사가 20개로 통폐합되면서 영화산업이 독과점구조로 재편되자 제작자이자 감독인 김기영은 존립이 어려워졌다. 그는 그저 연출자로 다른 영화사에서 기획한 영화를 찍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무렵은 한 해에 외화수입이 20여 편으로 제한되었던 시기로 문예영화를 만들어 수상을 하면 외화 수입권을 따낼 수 있었다. 1970년대에 김기영이 손을 댄 영화 대부분이 문예영화들이었던 까닭이 여기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들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도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청준의 소설이 원작이었던 '이어도'(1977)나 이광수의 소설로 만든 '흙'(1978)을 보면 원작의 분위기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여 김기영식 영화로 탈바꿈되어 있다. 1980년대에 다시 영화법이 바뀌면서 김기영은 '신한문예영화'라는 영화사를 차리지만 이 무렵 내놓은 영화들은 스스로도 실패작이라고 인정할 정도라 '육식동물' 이후 그의 침묵은 길어졌다. 그렇게 잊힐 줄만 알았던 김기영은 1990년대 중반부터 막 활동을 시작한 일군의 후배 감독들과 신진 영화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재조명하고 연구하면서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감독으로는 최초로 회고전이 열리면서 그의 작품들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열광적인 관객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그렇게 다시 활동의 불씨를 피우던 그는 새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던 중 그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내 김유봉과 함께 1998년 화재로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윤여정에 앞서 2020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역시 김기영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기생충'에서 주요한 배경이 되었던 2층집과 계단을 보면 '하녀'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이 만든 '박쥐'를 봐도 벽지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하나의 배우 역할을 한다고 봐도 좋을 소품 하나하나에 공들인 김기영의 자장 안에 있다. 임상수 감독은 2010년 '하녀'를 리메이크하면서 아예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병식' 역을 만들어 '화녀'의 윤여정을 불러들였다. 1990년 필름 파운데이션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 영화 복원 작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는 '하녀' 복원을 지원하고 싶다고 한국영상자료원에 직접 연락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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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화녀'가 지난 1일 무려 50년 만에 재개봉했다. 수상소감에서 언급했던 그의 첫 영화 데뷔작이다. 김기영 감독의 유작이 된 '천사여 악녀가 되라'(1990)에서도 그는 주연을 맡았다. 데뷔 54년차 74세의 나이에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그의 앳된 얼굴을 다시 보면서 문득 김기영이 여섯 번째로 되살리고 싶었던 '악녀'가 만들어졌다면 어떤 영화였을지 궁금해졌다. 오늘,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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