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의 한자마당] 낱말 공부는 필요한가

  • 이경엽 한자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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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38면   |  수정 2021-05-07 08:55
평소 한자어 많이 쓰고 있지만 낱말 자체 의미 충분히 이해 못하고 사용

한문공부

단백질을 눈으로 볼 수 있을까? '단백질'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난 이후 나는 수도 없이 내 눈으로 단백질을 본다. 국어사전에서 단백질을 찾으니 설명이 어렵다. '생물체를 구성하는 고분자 유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한다. 읽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단백질이란 낱말 자체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단백질이라는 물질의 구성과 역할에 대하여 주저리주저리 말한다. 한자 한 자만 알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단백질(蛋白質)이 알의 흰자질이라는 것을. 그 외의 설명은 낱말의 본뜻을 말한 후 서술하는 것이 순서가 될 것이다.

'반도'란 '대륙에 붙어 있다'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반도란 두 글자에 '대륙'이나 '붙어 있다'는 뜻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냐고. 낱말의 본뜻은 캐지 않고 그 현상만 설명하는 것은 단백질이나 반도나 마찬가지다.

한자를 모르면 한자로 된 낱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글자를 모르니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도(半島)가 대륙에 붙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반이 섬' 또는 '거의 섬'이란 글자 그대로의 뜻은 알지 못한다. 그것을 꼭 알아야 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몰라도 될 낱말에 왜 하필 반 半(반)과 섬 島(도)란 글자를 사용했을까? 딱히 그 뜻을 알 필요가 없다면 아무 글자나 갖다 붙여도 되지 않을까?

사전은 '수수료(手數料)'를 '어떤 일을 맡아 처리해 준 데 대한 보수'라 한다. 왜 국어사전은 낱말을 만드는 글자를 설명하지 않을까? 너무 당연하므로 글자 해석을 생략하는가? '손(手)을 움직인 횟수(數)에 따른 대가(料)'라고 글자를 풀어주면 사전을 훨씬 더 가까이하지 않을까?

한자를 몰라도 앞뒤 문맥으로 낱말의 뜻을 추리하거나 알 수 있다고 한다. 생활용어로 자주 쓰는 비교적 쉬운 낱말은 한자를 몰라도 대충 알 수 있으니 반은 맞는 말이다. 한반도·단백질·수수료 같은 한자어는 워낙 자주 접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대략 알지만, 낱말 자체의 뜻은 사용된 글자를 모르면 절대 알 수 없다. 왜 내가 말하고 읽고 쓰는 낱말을 추리하거나 대충 알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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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왜 배워야 하느냐'고 물으면 나의 답은 간단하다. 지금 내가 한자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고전을 읽기 위함도, 조상이 남긴 한자 문화유산을 잇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가 한자 낱말을 쓰지 않는다면 한자를 배울 이유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 영어를 몰라도 전문가들의 번역을 통하여 셰익스피어를 충분히 읽을 수 있듯, 한자와 한문을 몰라도 얼마든지 공맹(孔孟)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면 이 시간 내가 쓰는 낱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한자 공부의 불편한 진실은, 아는 한자로 된 낱말도 그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자의 대표 훈을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이다. 낱말 공부를 따로 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당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투자하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 내가 접한 이 낱말이 어떤 한자로 되어 있고 그 뜻이 무엇일까, 필요할 때 한 번 궁금해하면 된다. 스스로 답을 알 수 없으면 손에 쥔 스마트폰을 열면 된다. 지금이 바로 낱말 공부를 위하여 스마트폰을 열 때다.
이경엽 한자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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