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우뭇가사리

  •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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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8   |  발행일 2021-05-28 제37면   |  수정 2021-05-28 08:46
허기 채우는 '바다의 쌀' 일제가 값을 후려치자 해녀들은 판을 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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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뭇가사리를 건조하는 제주 성산포 해녀. 채취해 온 우뭇가사리는 빨아서 널어 말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는데 이과정에서 자주색이 흰색으로 바뀐다.
봄 영등철 제주 바다는 한바탕 용트림을 한다. 미역과 우뭇가사리를 채취할 시기가 다가옴을 알리는 징조들이다. 이 시기에 맞춰 영등제나 잠수굿을 하는 마을도 있다. 우뭇가사리는 홍조류로 가는 자홍색 연골질 가지들이 다발을 이룬다. 다년생이지만 여름 번식기가 지나면 본체의 상부는 녹아 없어지고 하부만 남아 있다가 다음 해 봄이면 새싹이 자라난다. 바닷물이 빠졌을 때 위치에서 수심 20∼30m 깊이 바위에 붙어 자란다. 조류가 거칠고 해수유통이 잘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 미역이나 톳, 심지어 모자반까지 양식을 하고 있지만 우뭇가사리는 아직 양식하지 않고 있다. 우뭇가사리가 잘 붙어 자라도록 '갯닦기'로 잡조(雜藻)를 제거하거나 큰 돌을 바다에 넣어 번식 면적을 확대하는 등의 소극적인 방법 정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산어보'에는 '해동초', 속명은 '우모초'라 했다. 그리고 '형상은 섬가채와 유사한데 다만 몸통이 납작하고 가지 사이에 가느다란 잎이 있으며 색은 자색인 점이 다르다. 여름철에 끓여서 우무묵을 만드는데 부드럽게 응고되어 무명하고 미끌미끌해서 먹을 만한 음식이다'라 했다. 해동초는 '끓여서 식히면 얼음처럼 굳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갯바위에서 붙어있는 모양과 색이 소털과 같아 '우모초'로도 불렸다. 제주나 완도에서는 '천초'라고 한다.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무를 '한천'이라고 한다. 뜨거운 물에 녹고 차가운 물에 응고되는 탓이다.


동해안과 제주 연안의 바위에 서식
씻어서 말리는 과정서 하얗게 변색
끓여 식히면 얼음처럼 굳어 '해동초'
채 썰어 콩국물에 넣고 마시는 냉국
열량 낮고 포만감 높아 여름철 별미

일제강점기 제주産 '반값매입 사건'
해녀들 분개…대규모 항일운동으로
광복 후 "외화획득" 정부 특별관리
美·日뿐 아니라 유럽시장에도 수출
해양 사막화로 채취량 급감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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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뭇가사리는 동해안, 특히 울산~포항~기장에 이르는 연안에 많았다. 제주 해녀들이 이곳으로 물질을 많이 갔던 것도 미역뿐만 아니라 우뭇가사리가 많아서였다. 감포, 양포, 구룡포, 대포 그리고 부산의 초량까지 오뉴월이면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해녀들이 가득했다. 파도와 바람에 떨어져 나온 우뭇가사리를 줍는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 해녀들.
◆번안지 주시레 가게 마씸

우뭇가사리는 동해안, 특히 울산~포항~기장에 이르는 연안에 많았다. 제주 해녀들이 이곳으로 물질을 많이 갔던 것도 미역뿐만 아니라 우뭇가사리가 많아서였다. 감포, 양포, 구룡포, 대포 그리고 부산의 초량까지 오뉴월이면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해녀들이 가득했다.

제주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을 '바당'이라 한다. 미역이 많으면 '메역바당', 우뭇가사리가 잘 자라면 '우미바당'이라 부른다. 제주에서는 오뉴월에 우뭇가사리를 채취한다. 어촌계장의 신호에 따라 망사리에 우뭇가사리를 가득 채운 해녀들이 하나둘 뭍으로 나온다. 이때에 맞춰 잠수 남편들은 경운기나 트럭을 가지고 포구로 나간다. 이를 '물마중'이라 한다.

우뭇가사리 철이 오기 전에도 바람과 파도가 지나고 나면 우뭇가사리를 비롯해 미역·톳 등 해초들이 갯바위에서 떨어져 바닷가로 밀려온다. 이때 해녀들은 물론이고 제주 삼촌들은 바닷가로 나와서 우뭇가사리를 줍는다. 다른 해조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뭇가사리만 줍는 것은 옛날 육지에서 짓는 쌀농사만큼이나 우뭇가사리가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이웃마을 해안을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 마을 사이에 불문율처럼 지키며 살아온 법이 있다.

우뭇가사리 채취 시기보다 앞서 영등철이면 파도에 떨어져 나온 우뭇가사리나 미역 등을 '번안지'라고 한다. 바람에 밀려온 해초라 '풍태'라고도 한다. 제주 우도 비양동은 우뭇가사리가 밀려온 해안(바당)을 네 구역으로 나누어 번갈아 가면서 주웠다. 이를 '번안지 곰(구미)'이라고 한다. '우뭇가사리가 밀려오는 바당'이라 해서 '우미곰' 혹은 '바당곰'이라고도 했다. 돈이 되는 우미가 밀려오는 우미곰은 입찰을 해 마을기금을 만들고, 다른 해초들은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주웠다. 입찰을 해서 사 놓은 '번안지 곰'에 운 좋게 우뭇가사리가 많이 밀려오면 이익을 많이 보지만 감태나 미역이 올라오면 손해를 본다. 우뭇가사리만 돈이 되다 보니 지금도 봄철 파도가 높으면 해녀들은 밀려온 우뭇가사리를 주우러 가면서 '번안지 주시레 가게 마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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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초가 잘 자라도록 갯닦기를 하는 제주 우도 해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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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취한 우뭇가사리를 운반하는 모습.
◆일본, 제주우미를 탐하다

우뭇가사리를 좋아하는 일제는 일제강점기에 쌀과 면화만 아니라 바다에서 나는 것도 많이 가져갔다. 멸치·고등어·삼치·도미만 아니라 갯바위에 붙은 우뭇가사리를 많이 가져갔다. 특히 제주도 우뭇가사리를 좋아했다. 일본인 도매상들이 해녀어업조합과 관리들과 결탁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강제매입하려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1930년 성산포에서 '우뭇가사리 부정판매사건'이 발생했다. 우뭇가사리를 시세의 반값으로 매입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듬해 하도리에서도 일본 수집회사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해산물 매입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해녀어업조합이 일본인 상인과 결탁해 해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에 분개했던 것이다. 급기야 1932년에는 1만7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해녀들은 목숨을 걸고 우뭇가사리를 지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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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우미냉국. 제주에서는 우무를 우미라 한다.
1937년 4월7일자 조선일보에는 '한천 재료인 석화채, 소응초, 어기초 등이 오십만 근에 달하지만 제조공장이 없어 일본으로 이출되었다가 한천을 만들어 수입되고 있다'며 목포해산물상조합은 직접 제조해야 수출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독부와 도 당국에 요청하기도 했다. 1930년대 말 전라남도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우뭇가사리였다. 당시 양식 적지는 흑산도·조도·제주도 연안이었으며, 1940년에는 13만근(1근=0.6㎏) 정도의 한천을 생산해 8할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총독부는 본국 수요를 위해 20만근까지 증산을 목표로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일제는 우리 바다에서 생산한 우뭇가사리를 가져가 한천을 만들어 조선에 수출했다. 우리 우뭇가사리를 탐하는 것은 일제만 아니었다. 광복 후 미군정 장관 딘은 정례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조선 수산물 중 세계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한천을 통제해 본국(미국)으로 독점 수출하려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이에 딘 장관은 '미국으로 수출한 것은 1947년 남조선 한천 생산량 60만근 중 단지 4만3천근'이라고 했다.

광복 후 한동안 정부가 외화획득을 위해 수출용 한천을 직접 매상했으며 품질 향상을 위해 특별관리를 했다. 1959년 5월29일자 조선일보는 '일본이 약 40만달러의 한천을 수입하기로 했으며, 미국과 홍콩에도 수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한천은 영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홍콩 등 유럽시장개척에 나선 통상사절단이 갖고 가는 상품에도 포함되었다. 1960년대 전국에 30여 개의 한천공장이 있었다. 원료가 부족해 수입품목으로 허가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970년대 한일무역협상에도 한천의 관세가 주요 의제로 제기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한천 대체재가 개발되면서 서서히 사양길을 걷는다. 대신에 패류양식이 늘었다. 최근 갯녹음 어장 확산 및 해양환경 악화로 인하여 점차 해조류가 사라져가는 '사막화 현상'으로 우뭇가사리 채취량도 감소하고 있다. 제주도내 생산량을 보면 2000년대 초반 2천여곘에 이르던 것이 최근에는 500곘에 불과하다.

◆해녀, 우미냉국으로 허기를 달래다

채취해온 우뭇가사리는 빨아서 넣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자주색은 마르면서 하얀색으로 바뀐다. 이렇게 갈무리해 놓은 우뭇가사리를 푹 삶아 걸러내서 식히면 우무가 된다. 제주에서는 '우미'라 한다. 콩을 삶아서 넣고 땅콩과 볶은 콩가루를 더한 후 깨와 소금을 넣으면 시원한 우미냉국이 된다. 여름철 물질을 마치고 마시는 우미냉국 한 그릇은 어떤 맛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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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중앙시장에서 5대째 우무 콩국을 파는 '독아지할매'.
간혹 통영에 가면 여름철에 들르는 곳이 있다. 중앙시장에 23번 간판을 달고 있는 '독아지할매'다. 노대도에서 우뭇가사리를 뜯어와 5대째 여름철이면 우무 콩국을 팔고 있다. 한 그릇에 2천원이다. 간혹 일이 있으면 노점을 비워두고 일을 보고 오면 우무와 두부가 줄어든 만큼 좌판에 천원짜리 지폐가 몇 장씩 올려져 있다. 시장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평소에는 두부를 만들어 팔고 여름에는 우무를 더한다. 즉석에서 콩물 우무를 한 그릇 할 수 있다.

우무는 특별한 맛이나 식감이 없다. 열량이 매우 낮고 오랫동안 포만감을 느껴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우뭇가사리는 가장 원시적인 가공식품이자 식량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소개된 토산물에 우모(牛毛)도 감태, 곤포, 가사리, 해태, 청각, 황각 등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우뭇가사리는 식품이나 식품첨가용 외에도 공업용, 농업용, 화장품용, 의약용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우뭇가사리를 더 즐겨 먹은 나라는 일본이다. 몇 년 전 일본 슬로푸드 단체인 '슬로푸드후지'와 함께 우무가공 및 판매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대로 일본 남쪽 이즈반도(伊豆半島) 바닷가 우뭇가사리를 수집해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명치2년(1869)부터 시작한 우뭇가사리 공장이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며, 상점에서는 팥빙수·아이스크림·우무 등을 판매한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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