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33년의 학교생활을 정리하며

  • 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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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4   |  발행일 2021-06-14 제26면   |  수정 2021-06-14 07:11
시련만큼 기쁨·보람 큰 시간
지칠 때마다 지지·격려해준
교수와 제자 등 잊을 수 없어
지역 사회와 언론에도 감사
교육 정의와 발전에 힘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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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지난주 1학기 수업을 모두 마쳤습니다. 성적처리만 남았습니다. 코로나19로 여전히 불편하고 걱정되는 상황이었지만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특히 학생들 불편이 컸습니다. 수업뿐만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 현장 실습, 아르바이트 모두 불편했을 것입니다.

이번 학기는 저에게 매우 특별한 학기가 됐습니다. 이 학기를 마지막으로 교육자로 살아온 33년 생활을 정리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33년 중에는 총장으로 일한 8년여도 있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고 흔치 않은 고난도 겪었습니다. 고통과 시련 이상으로 기쁨과 보람도 컸습니다. 보람도 감사한 일이지만 고난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힘들 때 혼자이지 않았던 것, 많은 분의 지지와 격려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의 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한번은 1993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재단에 의해 해직됐던 때였습니다. 재단의 전횡과 비리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실은 외로웠습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주위의 격려였습니다. 동료 교수들은 성금을 걷어 매월 생활비를 건네주었고, 189일이나 철야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학생들은 더했습니다. 수천 명의 학생들이 광장에 모여 저의 해직이 부당하다며 원상회복을 주장했습니다. '교수님 사랑합니다' '교수님 힘내세요'란 손팻말을 들고 응원해 주던 학생들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동료 교수들과 제자들의 지지와 격려는 고난에 처했던 저를 지켜준 힘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복직할 수 있었고 대학도 재단의 전횡과 비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해직으로 인한 아픔보다 보람이 훨씬 더 컸습니다.

두 번째는 총장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20년 가까이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어 오던 법인을 정상화하는 시기였습니다. 구재단과 대학구성원은 또다시 충돌했습니다. 비슷한 사정의 대부분 대학들에서 구재단이 복귀했습니다. 그 대학들은 또다시 휘청거렸거나 구성원의 반발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심한 경우는 폐교된 대학도 있었습니다.

대학구성원들과 함께 구재단 복귀를 반대한 저는 그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운명이라 생각했지만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쳐 쓰러질 때마다 학생과 교수, 직원과 동문이 지켜주었습니다. 지역사회와 지역 언론도 교육정의를 향한 저와 대학구성원의 열정을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 힘으로 대구대는 구재단 복귀를 막아내고 학생들의 학습권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고통이 컸던 만큼 이겨낸 기쁨과 보람도 컸습니다.

교육자에게는 보람이 전부입니다. 학생들에게 정의로운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의로운 교육환경에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마음껏 개척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교수로, 총장으로 일하면서 힘들 때마다 지켜준 지역사회와 지역 언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33년의 보람을 뒤로하고 이제 학교를 떠납니다. 사랑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이 섭섭하지만,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의 꿈을 응원할 것입니다. 다른 역할로 건전 사학의 교육 정의와 발전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학진흥재단 사무실에 첫 출근했습니다. 새로운 보람을 일구기 위한 새로운 각오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홍덕률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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