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이건희 미술관과 '남루한 숟가락'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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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7   |  발행일 2021-06-17 제23면   |  수정 2021-06-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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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문화부장

충격적이다. '문화도시 대구'라는 기치가 무색하다. 최근 한 지역 국회의원이 공개한 문체부의 2020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 자료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박물관을 제외한 국립전시공연시설 14곳 중 9곳이 서울에 있고 호남에 4곳, 부산에 1곳, 대구에는 하나도 없다. 인구 대비 문화시설도 밑바닥이다. 인구 100만명 기준 제주 205곳, 강원 150곳, 전남 118곳인데, 대구는 36.5곳이다. 17개 시·도 중 16위로 겨우 꼴찌를 면했다. 또 대구는 유일하게 14개 시·도에서 운영 중인 '문화의 집'이 없다.

미술관은 전시관과 달리 등록 규정이 까다로운 편인데,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구는 경기(53), 서울(46), 광주(14), 부산(8), 대전·인천(5)에 비해 겨우 4개 미술관(대구미술관, 대구문예회관 미술관, 경북대 및 계명대 극재미술관)을 갖고 있다. 전국 15개 광역시·도 중 역시 최하위다. 인구 100만명 당 미술관은 대구가 1.64곳이다. 가장 많은 제주(32.7)와 3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박물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경기(136), 서울(128), 부산(31), 인천(28)에 이어 대구는 16개관으로 매우 적다. 하반기 착공하는 간송미술관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이 같은 열악한 문화시설을 가졌음에도 대구시민의 '볼권리'욕구는 폭발적이다.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대구의 미술관 1개관당 평균 연 관람 인원은 전국 1위다. 총 4개 미술관 평균 연 관람 인원은 16만3천120명으로, 서울과 경기를 제치고 가장 많았다. 주목할 만한 건 서울의 1개관당 평균 연 관람 인원 13만8천407명에 비해서도 약 2만5천명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작년 초 대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진앙지였다. 문제는 2018년 조사에서도 대구는 꼴찌였지만, 다른 지역은 공공미술관이 오히려 늘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지난 2년간 광주는 3곳이 늘어나 9곳이 된 데 비해 대구는 그대로다. 즉 미술관 수는 대구가 전국에서 가장 적고, 관람 수요는 수도권 포함해 전국 1위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어떨까. 이들 국가는 오래전부터 '문화분권'정책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는 미술관의 경우 현대미술지방재단(FRAC)을 설립해 총 23개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다. 작년 기준 총 1천222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파리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는 136개 정도만 있을 뿐이다.

독일은 1천년 전부터 '문화연방주의'를 지향한다. 문화 관련 기관이 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다. 작은 도시도 탄탄한 문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운영 역시 지역자치다. 그 예로 독일 북서부 작은 도시 뮌스터와 중부 소도시 카셀은 각각 세계적인 조각도시이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제 중 하나인 현대미술제(Documenta)를 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분권은 백년하청도 아닌 역류다. 이건희 미술관 지역 유치와 관련, 지난달 황희 문체부 장관은 "지방 간 과열 경쟁은 국고손실이며, 수도권에 위치해야 홍보가 잘 된다"는 식의 발언을 해 귀를 의심케 했다. 게다가 몰지각한 일부 수도권 언론과 서울지역 미술계 한 인사는 한술 더 떠 이건희 미술관 유치경쟁을 벌이는 비수도권 지역을 "남루한 숟가락"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비 새는 지방미술관"이니 운운하며 지방소멸을 부추기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박진관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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