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10 끝] 흥겹게 춤추던 북한 여성들

  • 조현준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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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8   |  발행일 2021-06-18 제21면   |  수정 2021-06-18 07:35
고급술집서 본 북한의 민낯, 美 댄스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
사본 -클럽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북한 여성
클럽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북한 여성.

북한 함경북도에서의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달리며 우리 일행에게 격한 '마사지'를 제공해 주셨던 담당 기사와 가이드와 전직 교사, 그리고 그들의 다른 지인과 함께 호텔 인근에 위치한 식당에서 마지막 맥주 파티를 하였다. 모두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는데 나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고민하며 내가 몰래 촬영한 영상이 다음날 세관에서 적발되지 않기를 바라며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하여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 자정이 되자 모두들 술에 많이 취한 모습이었고 다들 잠을 청하러 호텔방에 휘청거리며 들어갔다. 밤에 호텔로 돌아온 후 절대로 밖에 혼자 나가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했던 가이드의 말이 머릿속에 스쳐지나 갔지만 가이드는 이미 인성 불성이 되어서 관리 불가 상태에 놓여있었다. 나와 같이 방을 쓰던 영국인 관광객은 침대에 눕자마자 코를 골고 있었고 나는 몰래 호텔을 빠져나왔다.

호텔 몰래 나와 고급술집 발견
종업원들이 김정은 찬양 노래
서양음악 틀어달라 부탁하자
한국클럽서 들을법한 음악나와
세계서 가장 폐쇄적 나라에서
외국 댄스음악 듣는 모습 생소

출국 전 세관서 보안검사받아
몰래 찍은 사진 들킬 위험도
무사히 출국했지만 십년감수
北 재방문 희망 간직한채 살아


방문을 열고 나와 1층을 향해 가는 복도에서 호텔 종업원들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느낌이어서 나는 대뜸 화장실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한 종업원은 화장실은 내 방에 있는데 왜 나와서 찾느냐고 하였다. 방에 다시 가는 척하면서 우회하여 무사히 호텔을 빠져나왔다.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호텔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어두컴컴하였다. 불빛이 보이는 곳은 '리발관'이라고 쓰인 장소뿐이었다. 일단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지만 '리발관'은 문이 닫혀 있었다.

어디 다른 촬영 장소를 물색하는 동안 이 '리발관' 지하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층계를 내려가니 음악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고 고급 양주 등이 카운터에 진열되어 있어 북한식 고급 술집일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한 종업원이 나를 맞이하였고 방 안에 들어서자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가라오케'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북한 여종업원 두 명이 맥주 5캔을 들고 오더니 김정은 찬양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나는 그들에게 서양 음악이 있으면 틀어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한국 클럽에서 들을만한 신나는 미국 댄스 음악을 틀어주었다.

이어 그들은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사회주의 찬양 노래를 부르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것이 바로 북한의 민낯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에서 말이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종업원들에게 폰 안에 저장되어 있던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 음악을 들려주었다. 한국 아이돌 가수 음악은 처음 들어본다며 신기해하였다. 앞서 만난 다른 북한 주민들은 아이돌 노래가 시끄럽다고 하기도 했지만 이 두 명의 종업원들은 박자에 맞춰 고개를 앞뒤로 끄덕거리며 음악을 감상하였다. 이 '가라오케'에서 1시간가량 머물고 중국 위안화로 계산을 하였는데 당시 환율로 한국 돈 2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나왔다. 다시 호텔로 들어가는 길이 조금 무서웠다. 심야에 관광객이 홀로 밖에 돌아다니는 것은 북한에서는 엄청나게 큰 위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호텔 안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북한에서의 마지막 아침은 역시나 스피커를 통하여 엄청나게 크게 울려 퍼지는 프로파간다 연설과 함께 맞이하였다. 북한에서는 오전 7시 정도 되면 이 연설이 시작되었는데 북한 주민들은 알람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문제가 될 법한 몰래 촬영한 영상들을 나의 컴퓨터 '비밀 폴더'에 저장했는데 북한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비밀 폴더' 안의 영상들을 확인하고 보이지 않게 잘 숨겨두었다. '비밀 폴더'는 특별한 기술을 이용하여 만드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안에 특정 폴더가 '보이지 않게끔' 하는 간단한 기술인데 특정 코드와 비밀번호로 폴더를 다시 '보이게끔'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다.

북한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 후에 북한에 입국했을 때의 세관이었던 '원정 세관'으로 향했다. 한 세관원은 나를 포함한 일행들의 카메라 메모리카드와 컴퓨터를 검사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의 전자기기를 어디론가 가지고 갔다. 나의 메모리카드와 컴퓨터의 일반 폴더 안에는 북한에서 촬영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영상들이 있었다. 어느 한 세관원이 나를 불렀고 나는 가슴 졸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컴퓨터 검사는 실제로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컴퓨터 부팅 시 비밀번호를 입력하게끔 설정해놨는데 이 비밀번호를 기입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어 밖에서 기다리던 나의 일행들은 하나 둘 본인들의 컴퓨터를 돌려받기 시작하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일행들이 컴퓨터를 돌려 받았을 때 나는 숨이 막힐 정도의 두려움에 휩싸였다. 종업원들이 서양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 북한 주민들이 대마초를 피는 영상 외에도 촬영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장마당의 모습과 정치적인 발언이 담긴 북한 주민들과의 인터뷰 영상 등…. '북한에 억류되는 것이 나의 운명인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몸살이 난 것처럼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일행 중 마지막 한 명이 본인의 컴퓨터를 받고 30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나는 컴퓨터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컴퓨터를 손에 든 채 황급히 걸음을 재촉했고 중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제정신을 찾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컴퓨터를 기다리던 이 30분은 내 인생에 있어서 평생 가장 두려운 30분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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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교수

나의 '비밀 폴더'에 있던 영상들은 중국을 거쳐 무사히 한국에 잘 도착하였다. 이 영상들을 활용하여 다큐멘터리 "삐라"를 제작하게 되었고 이후 기자들을 포함하여 국회의원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수없이 많은 방송 출연도 하였다. 정말 귀한 자료들을 촬영해 왔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다시는 북한 땅을 밟지는 못할 것 같다. 이제는 나의 '북한 이야기'가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아마 북한 세관에서 내 여권을 보는 순간 '30분의 기적'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으니 비행기 타고 평양에 오시라.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계명대 언론영상학과〉

'조현준 교수의 북한 이야기' 연재는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마칩니다. 좋은 기획을 해주신 조현준 계명대 교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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