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부르주아 생리학…부르주아의 우아하고도 치졸한 일상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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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8   |  발행일 2021-06-18 제15면   |  수정 2021-06-18 08:01
19세기 신흥자본가이자 지적진보 주체
허위의식으로 속물적이라 비판받기도
부르주아였던 저자가 직접 계급 풍자
200년이 지난 현대에도 깊은 울림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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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생리학'에는 풍자화가 앙리 모니에가 그린 부르주아 인간 군상이 삽화로 들어가 있다. <페이퍼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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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모니에 글·그림/ 김지현 옮김/ 페이퍼로드/ 184쪽/ 1만5천800원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애초에 그것이 바로 파노라마 문학과 생리학 장르의 가장 근본적 배경이다. 이때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던 존재, 급변하는 19세기의 주인공이 '부르주아'였음은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지앵을 사로잡은 '부르주아(Bourgeois)' 앙리 모니에(Henry Monnier)가 직접 그리고 묘사한 부르주아의 우아하고도 치졸한 일상을 담고 있다.

부르주아는 서구의 대항해시대 이후 부를 거머쥔 이들이며 주로 대지주이거나 상업에 종사하는 자본가들이었다. 저자는 부르주아의 인간군상을 면밀히 분석해 오늘날 우리에게 '재벌'로 표현되는 현대적 의미의 부르주아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독일 철학자이자 평론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앙리 모니에를 두고 "자기 자신을 관찰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속물" "생리학의 거장"이라 칭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벤야민은 자신의 저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에서 기술 발전과 함께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붕괴됐다고 말한다. 더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모나리자를 볼 수 있고, 원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소유할 수도 있다는 것.

이전 예술작품이 신과 종교를 중심으로 한 숭배의 의미를 지녔다면 이제는 작품의 독창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기술복제 차원을 넘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과 계급이 붕괴할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신흥 귀족집단이라 불리는 부르주아다.

이들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부와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전히 예술작품에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존재를 신격화시키기를 원했다. 벤야민은 이러한 상류층의 태도를 '예술에 관한 속물적 관념'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에 대한 회의적 입장을 취한 벤야민이 인정한 부르주아가 한 명 있었고 그가 바로 풍자화가이자 삽화가, 희극작가였던 앙리 모니에다.

부르주아에 의한, 부르주아를 위한 부르주아 시대의 문학, 그중에서도 '부르주아 생리학'은 이 책의 주요 독자이자 거품 같은 풍요의 특산품인 부르주아를 분석하고 풍자한다.

옛 프랑스 사회의 인간군상을 분석한 이 작품을 통해 인간사회의 모순과 허위의식이 여전히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부르주아란 도시를 가리키는 '부르(bourg)'에서 파생된 '성(城) 안 사람'이란 의미다. 이때 부르주아는 왕이나 성주와 달리 실질적 활동의 주체로 이 세계의 상업과 산업뿐 아니라 문화적·지적 진보의 주체였다.

이들은 혁명에 앞장섰고 사회를 움직이는 지적 동력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무산계급인 평민들은 기득권층인 이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면서도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는 부르주아의 풍요로운 삶을 동경하는 모순된 감정을 품게 됐다. 부르주아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갖가지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는 그 정확성이야말로 부르주아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주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여겼던 점도 이러한 현상에 한몫했다.

반면, 현대 한국사회에서 재벌로 불리는 이들의 삶은 과거의 부르주아와 다르다. 이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길 원한다. 이들에게서는 앙리 모니에가 고민했던 부르주아로서 자신에 대한 성찰, 더 나아가 유산계급 부르주아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찾아볼 수 없다. 지성이 결여된 채 부에 따라 나뉜 계층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종교, 젠더, 빈부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200년 전 풍자 작가가 묘사한 부르주아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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