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의 문학 향기] '아라비안 나이트'의 스토리텔링 기법

  • 서영처 시인·계명대 타불라라사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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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8   |  발행일 2021-06-18 제15면   |  수정 2021-06-18 07:59

서영처
서영처 (시인·계명대 타불라라사칼리지 교수)

'아라비안나이트'는 액자 속 액자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법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키워나간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야기꾼이 등장하고, 이야기 속에 등장한 사람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야기는 존재의 내면으로 침투해 독자를 낯설고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미로구조는 자기를 잃어버리는 구조가 아니라 수많은 군상과 합일을 체험하게 하고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이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선과 악, 죄와 벌, 은혜와 배신, 신앙과 불신앙, 도덕과 악덕, 문명과 야만, 상거래와 약탈, 굴욕과 복수 등 세계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상반된 가치를 넘나들며 현실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길항 속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이것은 부정적 가치가 보다 큰 긍정적인 가치에 기여하게 함으로써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고 통일성을 지향한다. 대립의 형식은 이야기의 정신이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미적 법칙이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야기는 당대 정신을 담고 상호모순적인 개념들을 포괄하는 질서의 세계로 나아간다.

'아라비안나이트'에는 미천한 신분에서부터 고귀한 신분의 사람까지 모든 계층의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이러한 설정은 신분질서로 이루어진 경직된 인간관계를 벗어나 인간 대 인간의 유대를 살리며 세계인이 모두 주인공이 되는 대등하고 확장된 세계를 만든다. 또 산문과 운문의 조화는 긴장과 이완으로 완급을 조절하고 이야기의 격조를 높이며 주제를 강조한다. 역동적으로 진행한 이야기일수록 이야기는 출발점으로 돌아와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이처럼 이야기는 정신성과 역사성, 사회성을 보여준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샤라자드가 이어가는 이야기다. 왕은 이야기를 듣는 청자로 머문다. 이야기는 무의식에 스며들어 지시하는 귄위적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샤라자드는 듣기의 침투적 속성을 이용해 왕의 시간을 자신에게 고정시켜 왕의 마음을 의도대로 움직였다. 샤라자드는 불확정적인 시공간을 연속적으로 이어가며 확정되고 완전한 결말에 이르고 생산자이자 창조자로 거듭난다. 불확실성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이어나간 샤라자드의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을 상징하는 철학적 의미마저 띤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재미뿐 아니라 보편성과 대중성, 예술성을 갖춘 세계의 문학이다. 광활한 지역을 배경으로 1천년 이상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다양한 장르에 영향력을 미치는 생명력 있는 텍스트다.

<시인·계명대 타불라라사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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