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더 짙어지는 고령화의 그늘 .5·<끝>] 새로운 도전에 나선 노인들

  • 정우태,서민지
  • |
  • 입력 2021-06-23 07:33  |  수정 2021-06-29 11:31  |  발행일 2021-06-23 제3면
자원봉사·공부하며 '인생 2막' 즐기는 新노년층

빈곤율 증가 등 고령화의 그늘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지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고령층도 늘고 있다. '고령사회'에 희망과 활기를 불어넣는 셈이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단독가구(노인 부부가구·1인 가구)는 2008년 66.8%에서 지난해 78.2%로 늘어났다. 단독가구가 보편화된 이유 중 하나로 노인들의 '자립적 요인'이 꼽힌다. 자녀의 결혼이 28.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그다음으로 '개인(부부) 생활 향유'(19.9%)가 많았다. '기존 거주지 거주 희망'(18.2%), '경제적 능력'(12.7%) 등이 뒤를 이었다. 자녀와의 동거를 원하는 비율도 2008년 32.5%에서 2017년 15.2%, 지난해 12.8%로 줄어들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개척하는 '신(新)노년층'의 대표주자들을 만나봤다.

KakaoTalk_20210622_144547047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 민원인 안내·복지관 어르신 상담 봉사자 이인선씨. <본인 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민원인 안내·복지관 어르신 상담 봉사자 이인선씨

"오전엔 복지관서 어르신 상담
오후엔 법률공단 민원인 안내
퇴근후엔 바리스타·목공예 배워"


"나에게 맞는 즐거움을 찾으세요. 가까이엔 행복이 너무 많아요. 그 행복을 찾아보세요."

이인선(여·63·대구 수성구)씨는 대구의 한 의류 매장에서 청소와 옷 정리 등을 5년간 하다 2018년 3월 1호 정년퇴직을 하게 됐다.

언제나 바빴던 이씨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바쁘다. 오전 시간에는 노인 전화 상담을 한다. 이씨는 고산노인복지관 어르신상담센터 소속 봉사자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노인 3명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한다. 동년배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있어 상담은 편하게 진행된다.

오후 1시쯤엔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지부에 출근해 민원인 안내를 한다. 퇴근은 오후 5시쯤. 바쁜 와중에도 '사주명리학'과 예절 교육을 받고 있고, 대구시에서 운영하는 '라이프리더스 학교'에서 바리스타 교육, 목공예를 배우기도 한다.

"하는 일을 모두 손에서 놓고 나면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현재로선 하루하루가 바빠요. 게다가 요즘은 노인이라도 배움의 길이 너무 많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뭐든 배울 수 있어요."

이씨는 동년배에게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거창한 것은 필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맞는 사소한 일거리를 찾게 되면 시간은 '재미있게' 흐른다.

그에겐 '봉사'가 인생의 즐거움이다. 1999년쯤 장애인 어린이집에 처음 봉사하러 가서 자지러지게 우는 한 아이를 돌보고선 다시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아이 얼굴이 아른거려 다시 어린이집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을 보며 배시시 웃는 아이의 모습에 빠져버렸다. 치매 센터, 대학병원 안내, 노인복지관 상담 등의 봉사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이씨는 "봉사를 하면서 내가 남에게 베푼 것보다 얻은 게 더 많다. 어르신 상담을 하면 '이런 건 이분께 꼭 배워야지' '내가 이분 연세가 되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등이 각인된다. 가볍게는 '이렇게 옷을 입어야지'라는 생각도 든다"라며 "네 명의 자식들도 바르게 컸다. 이 일을 통해 너무 많은 걸 얻은 사람이라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KakaoTalk_20210622_125353542_01
신천둔치 환경정화 작업반장 안인기씨.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신천둔치 환경정화 작업반장 안인기씨

"젊은시절 하사관으로 10년 근무
전역하고 '노인 일자리'에 참여
신천둔치 환경 정화 보람 느껴"


안인기(74)씨는 신천둔치 환경정화를 책임지고 있다. 젊은 시절 하사관으로 10여 년을 근무한 그는 전역 이후 책 도매업,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7월 직장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던 안씨는 지인의 제안으로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게 됐다. 몸이 불편한 아내를 돌볼 시간도 필요했기에 짧은 시간 일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노인 일자리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안씨는 "퇴직을 하고 한 달 정도 집에 있다 보니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집사람과 둘이 지내고 있어 장시간 근무하는 건 부담이 됐다. 그때 일자리 제의를 받았고 꽤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다.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좋고, 금액도 넉넉한 것은 아니지만 생활에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대구 시민들의 휴식처'인 신천둔치 환경을 정화하며 적지 않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도 생겼다. 안씨는 "작업반장으로 총 48명의 인원을 관리하고 있다. 칠성교에서 대봉교까지 쓰레기를 치우며 걷다 보면 건강도 챙길 수 있다. 깨끗해진 거리를 보면 뿌듯한 마음도 들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도 느낀다"고 했다.

비슷한 나이대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활력도 되찾았다. 그는 여생을 무기력하게 보내기보다 소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며 스스로 동기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안씨는 "우리 또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긍정적인 생각이 앞선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으면 가끔 의견 차이도 생기지만, 살 만큼 살았으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 배려하며 지내면 좋겠다. 하루하루 보람차게 살아가는 지금이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KakaoTalk_20210622_125353542_03
대구 중구시니어클럽 강사 하숙자씨.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대구 중구시니어클럽 강사 하숙자씨

"대구 중구시니어클럽서 교육업무
30년이상 지역 가리지 않고 봉사
노인 대하는 사회적 인식 변해야"


하숙자(여·74)씨는 대구 중구시니어클럽(운경재단)에서 교육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고령층에게 도움을 주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하씨는 30년 이상 봉사활동을 해왔다. 대구지하철참사, 태풍 매미, 태안 기름유출 등 재난이 있을 때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현장 자원봉사에 나섰다.

그는 독거노인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이웃과 교류가 없는 한 어르신의 마지막 4년을 함께했던 것이다.

하씨는 "처음 1년은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는데, 차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재활 치료에 참여하면서 나아지는 듯하다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 '살면서 행복했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 잊히지 않는다. 주변에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 각 지자체에 시니어클럽이 만들어지면서 하씨는 자연스럽게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사업에 강사로 참여하게 됐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시대의 변화도 체감하고 있다.

그는 노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적 안전장치도 중요하지만 노인을 단순히 '사회적 약자'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예전에는 60세만 넘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곤 했는데 요즘은 완전히 달라요. 70, 80세가 넘어서도 스스로를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면서 활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씨는 "지금의 고령층은 대한민국을 일으킨 역군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는 교육을 할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솔선수범할 것을 독려한다. 코로나19로 많이 힘든 시기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고령층이 용기를 잃지 않으셨으면 한다"고 했다.

정우태기자 wtae@yeongnam.com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정우태 기자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서민지 기자

정경부 서민지 기자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