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어머니와 자수…낡아서 닳을 무렵 알게 되는 어머니의 마음

  •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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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09   |  발행일 2021-07-09 제36면   |  수정 2021-07-09 08:58
자수 밥그릇 속 넘칠듯 가득한 꽃
사랑 줄 수 있는 순간 최선 다하는
자식들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 담겨
가장자리 올이 풀리고 해질 때쯤
자식은 어머니 마음을 알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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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영 인형 작가 작품.
여름의 풍경 속에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들이 들어있다. 그 귀한 사랑의 모습들이 강물처럼 흘러 환한 길을 내는 것이었다. 한순간 흔적 없이 올이 풀리는 시간이 온다 해도 오늘 고운 무늬의 뜨개질을 촘촘히 짜야겠다. 그 여름 숲처럼 깊고 융숭한 사랑의 기억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수건 이야기를 꺼내자 친구는 자신이 놓은 자수 방석 사진을 보여준다. 아이들의 결혼선물로 방석을 만들어준 것이라 했다. 그 수는 밥그릇 속에 꽃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처음에는 밥그릇이 작았는데 자꾸 크게 키워 수를 놓게 되더란다. 조금 더 크게 하다가 이렇게 커져 버렸다면서 겸연쩍게 웃는다. 눈가로 잔주름이 곱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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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 꽃수.
그러다가 꽃을 밥그릇 위에 수 놓기 시작했는데 자꾸만 수북하고 빼곡하게 채우게 되었다고 한다. 부끄러운 수 솜씨를 전문가에게 보이게 되었다고 멋쩍어 했지만 그 수를 보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저 간절함이 어머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그릇을 가득 채운 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름철에 차려 놓은 밥상은 저녁이 되면 쉬어버리지만 아이가 배고플까봐 여전히 어머니의 밥상은 차려지고 그 밥상들은 저녁이 되면 버려진다. 한 끼라도 엄마의 밥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과 바깥의 단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입맛은 늘 쓸쓸한 결말을 보여준다.

친구의 마음속에 있었던 간절함은 1977년 문예중앙지에 발표된 이청준의 단편소설의 '눈길'의 글 속에 있는 어머니의 마음과 닿아 있다.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 성히 지내거라.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어머니와 어머니의 마음들이 이렇게 강물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화 속의 화조도(花鳥圖)에도 꽃들이 가지마다 빼곡하게 맺혀있다. 그 간절한 기원과 밥그릇의 무게감 속에는 빈틈없이 일치하는 마음이 있다. 친구는 자신의 빼곡한 수를 보며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건가?"라고 반문한다. 자식들을 향한 간절하고 지극한 그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욕심일 리는 없지 않은가? 서운한 목소리로 "그런데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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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영 인형 작가 작품.
아이들은 그 자수가 낡아서 해질 무렵 어머니의 마음을 읽을 것이고 그 사랑의 마음이 그때야 비로소 강물처럼 자신들의 가슴에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손수건의 가장자리가 풀려나가는 오늘 할머니의 하루가 영화처럼 선명하게 내 눈앞에 펼쳐지듯이….

오늘은 오랜 시간 코로나로 닫혀있던 박물관 수업이 대면 수업으로 열린 날이다.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비로소 옛 가전체(假傳體) 국문 수필(隨筆)인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의 작품이 인형으로 제작되어 공연하게 된 날이다.

이 규중칠우쟁론기는 규방(閨房)의 일곱 가지 사물, 즉 골무, 자, 다리미·인두·가위·실패·바늘 등을 의인화(擬人化)해서 그 인물들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바느질을 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재미있게 다루면서도 갈등과 화해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의미 있는 고전이다.

박물관에서 동화책으로 쓰고 8년 만에야 비로소 일곱 친구들의 모습이 인형으로 탄생되었다. 선생님들은 모든 열정과 사랑을 쏟아서 공연한다. 한순간이라도 더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힘을 쏟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머니들이 또 이렇게 우리 곁에 많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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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사랑을 줄 수 있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눈물겹고 아름답다. 앞으로 80회의 시간들을 책 속의 이야기에서 인형으로 탄생한 일곱 친구들과 함께할 것이다. 아이들의 삶 속에 전통의 향기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짜여지기를 기원해 본다. 우리는 내일 아이들이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오늘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물관 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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