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초등 지역역사 탐방활동, 교과서에 나온 대구역사 탐방…소풍 온 듯 놀면서 '열공'

  •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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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2 08:04  |  수정 2021-07-12 08:05  |  발행일 2021-07-12 제12면
신숭겸 유적지서 고려시대 충·의 개념 배우고
불로동 고분군 방문 삼국시대 신라세력 확인
4학년 사회단원에 있는 내용과 맞아떨어져
아이들 학습 이해에 큰 도움될 것으로 기대
오랜만의 야외활동에 스트레스 해소 '일석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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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삼덕초등 학생들이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신숭겸 장군과 고려 개국 역사에 대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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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삼덕초등 학생들이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OX퀴즈를 하고 있다.

고려 개국 1등 공신인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대구시 기념물 제1호다. 이곳은 신숭겸 장군의 충의를 기리는 곳으로 고려 개국 역사를 배우고 느낄 수 있다. 대구시·대구시교육청 주최, 영남일보 교육인재개발원 주관 '대구사랑 역사탐방 체험학습' 프로그램에도 신숭겸 장군 유적이 포함돼 있다. 대구 동구 불로동과 입석동 구릉 서남면에 214기의 고분이 분포해 있는 불로동 고분군은 신라시대 대구지역 생활문화상을 잘 보여준다. 고대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대구 분지의 옛 모습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우리나라 고분군으로는 가장 먼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62호로 지정됐다.

지난달 16일 대구삼덕초등 4학년 학생 84명은 '대구사랑 역사탐방 체험학습'에 참가해 신숭겸 장군과 고려 태조 왕건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신숭겸 장군 유적지와 삼국시대 문화를 느끼게 해주는 불로동 고분군을 탐방하며 대구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고려 개국 역사 배워요

이날 신숭겸 장군 유적지를 찾은 학생들은 문화해설사들의 인솔과 함께 조를 나눠 신숭겸 장군상, 표충단, 표충재, 표충사 등을 둘러봤다. 버스를 타고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 도착한 학생들은 마스크 쓰기, 발열 체크, 손 소독 등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학생들이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신숭겸 장군상이다. 말을 타며 활을 쏘고 있는 모습을 한 신숭겸 장군상은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가 뛰어난 장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날아가는 새를 활로 쏴 맞출 만큼 뛰어난 활솜씨를 표현했다.

신숭겸 장군의 피 묻은 옷과 피를 흘리며 순절한 곳의 흙을 모아 만든 표충단에서는 신숭겸 장군이 전사한 공산전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후삼국시대인 927년 9월 팔공산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맞붙은 공산전투는 왕건과 견훤의 숙명적 대결이었다. 견훤의 신라 공격 소식에 경애왕은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군사 5천명을 이끌고 온 왕건은 팔공산에 먼저 매복해 있던 견훤의 군사에게 일격을 당하고 치열한 전투 끝에 패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때 왕건의 부하였던 신숭겸 장군이 왕건의 갑옷으로 바꿔 입고 위장한 후 왕건 대신 싸우다 전사했다.

태조 왕건을 대신해 전사한 신숭겸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인 표충사에서도 신숭겸 장군의 충절에 대한 교육이 계속됐다. 왕건은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신숭겸 장군에게 장절(壯節)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지묘사를 세운다. 하지만 지묘사는 고려가 망하면서 함께 없어진다. 그 뒤 1607년에 신숭겸 장군의 외손이자 경상도 관찰사였던 유영순이 지묘사가 있던 자리에 표충사(表忠祠), 표충단, 충렬비를 세웠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 때 표충사도 함께 사라졌으나, 1993년 신숭겸 장군 후손들에 의해 복원됐다.

김민준 학생은 "왕을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신숭겸 장군의 이야기를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서 들으니 더 좋고,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며 "왕의 옷을 대신 입고 왕을 구하려고 한 마음이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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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삼덕초등 학생들이 불로동 고분군에 올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삼국시대 축조 '불로동 고분군'

신숭겸 장군 유적지를 둘러본 삼덕초등 학생들은 불로동 고분군으로 이동했다. 불로동 고분군은 불로동 야산 일대에 분포돼 있는 봉토분으로 현재 214기의 고분이 밀집돼 있다.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건너온 무덤만 남아 있을 뿐 언제 조성됐으며, 누가 묻힌 무덤인지는 수수께끼다. 약 31만7천350㎡ 면적에 지름이 20m가 넘는 무덤부터 일반 무덤만 한 것까지 크고 작은 봉분 수백 기가 구릉을 따라 펼쳐져 있다. 인접한 봉무동, 단산동, 도동의 구분과 합치면 300기가 넘는다.

학생들은 솟아있는 고분들 사이로 난 1.5㎞ 남짓한 오솔길을 따라 언덕 위까지 올라갔다. 언덕 위에서 인근 동네를 내려다보고 '야호!' 소리를 외치면서 그간 하지 못한 야외활동의 아쉬움을 씻어 냈다.

이어 학생들은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불로동 고분군의 축조시기 등을 배웠다. 불로동 고분군은 삼국시대인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신라가 한창 각 지역에 있는 세력을 정복해서 국가다운 국가로 출발하는 시기로, 학계는 이 일대 토착 지배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다. 1938년 일본 학자가 처음 발굴 조사했고, 1963년 경북대박물관에서 추가로 발굴을 시작한 이래로 수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뤄졌다. 발굴 조사를 통해 무덤의 구조를 파악했고, 금귀걸이·토기류·무기류 등의 유물이 일부 출토돼 당시 모습을 추정할 수 있었다.

하승훈 학생은 "커다란 무덤이 언덕 전체에 넓게 펼쳐져 있어서 신기했고, 언덕 위에 올라가니 기분이 좋았다"며 "경상도 지역에서는 신라시대부터 돔배기라는 상어고기를 제삿상에 올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방숙 교사는 "4학년 사회 단원에 대구역사를 배우는 단원이 있는데, 교과와 체험학습이 잘 맞아떨어져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준기자 hyeok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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