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작품이 주는 감동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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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20   |  발행일 2021-07-20 제23면   |  수정 2021-07-20 07:10

학교에서 이뤄지는 미술교육의 맹점으로 천편일률적인 감상법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교과서에 실린 작품에 대한 감상을 모범답안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다. 사실 감상에 모범답안이란 없다. 많은 이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모나리자'를 떠올리고 이를 그의 최고작으로 여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모나리자가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작품 앞에 인파가 몰린다. 과연 이 작품이 최고의 감동을 줄까. 10여 년 전 모나리자를 직접 본 소감은 '아니다'였다. 빽빽이 둘러싸인 사람들의 머리 위로 어렴풋하게 보이는 그림은 감동을 줄 시간마저 허락지 않았다. 사실 모나리자는 1910년대 일어난 도난사건으로 유명해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명작은 맞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피카소 연루설까지 나돈 이 사건을 겪으면서 박물관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화제작이 곧 최고작은 아니다. 이보단 자신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이 최고작이 아닐까.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차계남 전시(9월26일까지)는 작품이 주는 감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한지를 손으로 하나하나 꼬아 만든 줄을 촘촘히 붙여 완성한 작품을 보면 우선 거대한 규모에 압도된다. 작품의 아름다움에 앞서 제작 과정을 인지하는 순간 관객의 마음은 숙연해진다. 작품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작가를 위한 가족의 희생 때문이다. 그의 곁에는 늘 언니와 남동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들은 작가의 일본 유학 시절은 물론 귀국 후에도 든든한 후원자였다. 차계남을 좀 아는 이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작가만이 아니라 형제의 열정도 느낀다. 이것이 작품에 가치를 더한다.

많은 예술가가 가족의 희생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한다. 하지만 가족은 이를 희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보람이라 생각하고 행복해한다. 인생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홀로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의미 있고 발전한다. 혼자서는 있지 못하는 사람인(人)처럼 사람과 사람이 의지하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코로나19를 통해 이 인생 진리를 재확인했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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