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1980년대, 한껏 힘준 어깨와 화려한 색감…자신감 '뿜뿜'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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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30   |  발행일 2021-07-30 제37면   |  수정 2021-07-30 09:09
컬러TV 보급과 세계화로
활기차고 당당한 모습 부각
핑클펌과 과감한 색조화장
몸매 드러나는 레깅스패션
'SNS과시' 요즘감성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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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파워슈트에서 영감받은 Proenza Schlouier 2020S/S 의상. <출처 wg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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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서 영감받은 패션 Tom-Ford 2018. <출처 Vanityfair.com>

2015년 방영을 시작했던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인기로 1980년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들도 그 시절의 분위기와 생활용품을 한번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197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지어지던 때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전세계적으로 경기호황을 맞아 '소비'와 '과시'의 분위기로 둘러싸였으며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가 확산되어 경제적·문화적으로 활기차게 들썩이는 기운이 고조됐다.

이러한 흐름은 패션의 세계에도 스며들어 이전보다 더 과감하고 화려한 색감과 스타일이 부각됐다. 특히 사회경제적 구조의 발달로 전문직 종사자가 증가하면서 미국에서는 젊은 엘리트층인 여피(Young Urban Professional)가 주요 소비 집단으로 부상했고 그들의 우월감과 과시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패션이 대두됐다. 즉, 넓은 어깨선으로 과장된 파워 숄더(power shoulder) 정장은 1980년대의 대표적 패션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의상에서 어깨를 과장한다는 것은 권위, 우월, 과시, 힘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수백년 전 의상에서부터 현재 TV 프로그램의 CG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 확장되면서 남성과 대등하게 직장에서 보다 당당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전투복 같은 역할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장과 과시적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는 패션으로는 요즘은 우리나라에 직수입되고 있는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그 시기에는 라이선스로 들어와 브랜드 로고 자수가 눈에 띄게 박힌 넥타이·와이셔츠 등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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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버진투어 중인 마돈나. <출처 위키피디아>

1980년대의 생활을 직접해 본 사람들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M-tv의 등장과 컬러TV의 대중적 보급으로 팝 가수와 세계화 문화를 '컬러'로 생동감 있게 볼 수 있었고 음악과 함께 가수들의 화려한 패션은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커지게 됐다. 미국 팝음악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필자는 '1980년대'라 하면 팝 황제인 마이클 잭슨을 포함하여 미국 45명의 가수들이 아프리카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해 1985년 발표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보이 조지, 신디 로퍼, 프린스 등의 팝음악과 함께 워킹 걸(Working girl), 아메리카 사이코(American psycho) 등 영화에서 선보인 파워 숄더의 과장된 어깨선의 재킷 슈트뿐 아니라 너풀거리는 장식적 요소와 빨강, 보라, 파랑 등 원색적으로 다채로운 색감의 패션은 대중들에게 폭넓게 파급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세련된 감각의 슈트로 대표되는 아르마니(Armani)와 화려한 색감의 대명사였던 베르사체(Versace)는 1980년대의 감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떠올랐다. 의상에서뿐 아니라 파마로 부풀려진 머리스타일과 넓게 퍼진 눈화장 등 과감한 색감의 얼굴 화장 등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과함' '과장'의 특성을 유행했다.

이전보다 경제적·문화적 여유가 생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에어로빅 등 건강관리와 운동을 통한 여가생활이 인기를 끌었으며 패션에서도 레깅스와 운동복 스타일이 유행하게 됐다. 이는 흡사 현재의 운동(athletic)과 여가(leisure)가 합해진 애슬레저(athleisure) 패션과 레깅스 열풍의 선배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핑클 파마와 헤어 스프레이로 앞머리를 세우고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팝음악에 심취한 젊은 층의 모습도 전체적인 1980년대 패션스타일을 구성하는데 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과시적 성향과 운동을 통한 몸매관리의 분위기는 그 시대에 유행한 체형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잘 다듬어진 근육질을 추구하게 됐다. 영화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 코만도의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우람한 근육과 마초적 남성의 모습은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패션쇼와 광고에도 등장해 그 시대의 이상적 신체를 표현했다. 이는 여성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명 패션모델들, 가수 등의 체형에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는 뉴욕·파리 등 세계 패션컬렉션이 대중들과 보다 가깝게 되어 유명 패션모델들도 가수와 배우들 못지않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건강하고 성숙한 체형을 이상적으로 보여주었고 이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모습은 단단한 복근을 부러워하고 피트니스·필라테스 등 다양한 운동을 생활화하고 SNS에 올려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2021년 현재 우리들의 감성과 유사한 맥락으로 보여진다.

이전부터 지속됐던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해체되고 혼재되는 표현을 보여줬던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적 디자인은 세계화의 시기 도래로 그간 만나기 어려웠던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와 시대의 혼용과 절충, 그리고 이보다 확장하여 겉과 속의 뒤바뀜, 위치의 재배치 등을 표현하면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다양성과 새로운 감성, 개성을 추구하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전위적인: Avant-garde) 스타일의 패션브랜드가 주목받게 돼 인체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의상구성을 재배치한 디자이너 브랜드인 꼼데가르송, 이세이 미야케 등과 신체라인을 부각한 의상의 아제딘 알라이아, 시대적 혼용을 보여준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새로운 특성을 나타낸 디자이너가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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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1980년대의 새로운 상황과 분위기는 패션에 뿐만 아니라 의자 등 생활 디자인에도 반영돼 이전부터 시도되었던 현대적, 기능적, 상업적, 획일적 표현에서 탈피되고 비형식적 특성을 보다 과감하게 보여주게 됐다. 원색적 색감, 불안정성, 유머러스함 등 보다 개방된 예술성으로 재미있는 디자인을 도출하여 패션과 생활 디자인에서 사람들이 예술적 디자인을 보다 대중적으로 폭넓게 받아들이게 되는 대문을 열게 됐다. 이와 같은 1980년대의 모습은 단순히 패션스타일만이 아니라 시대적 감성,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2021년 우리의 모습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이전의 10년보다 훨씬 풍성한 디자인과 감성으로 가득찬 1980년대를 생각하면서 비오는 날, 유튜브에서 라이오넬 리치의 헬로우를 찾아보게 된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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